타자 없이 16명의 외국인 선수들이 모두 투수들이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이래 13년 만에 처음있는 일.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각 구단들의 기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한화 이글스가 지난 18일 볼티모어 출신 우완 브라이언 배스(30)를 선발하면서 2012시즌 외국인 선수 계약이 일단 모두 완료되었다.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KIA 타이거즈가 ‘여의치 않을 경우 조속히 바꾼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레다메스 리즈-벤자민 주키치와 모두 재계약한 LG 트윈스를 포함, 어쨌든 16명의 외국인 투수가 2012시즌 그라운드를 달굴 예정이다.
지난해 통합 우승에 아시아시리즈 제패까지 성공한 삼성 라이온즈는 덕 매티스-저스틴 저마노와의 재계약을 모두 포기하고 미치 탈보트-브라이언 고든으로 외국인 투수진을 꾸렸다. 추신수(클리블랜드)의 옛 동료이기도 한 탈보트는 2010시즌 클리블랜드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10승 13패 평균자책점 4.41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188cm 91kg의 건장한 체구를 지닌 탈보트는 최고 153km의 포심 패스트볼과 싱킹 패스트볼, 체인지업 구사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메이저리그 구단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한 시즌 10승을 거둔 경력을 지닌 만큼 시일이 지나도 구위를 잃지 않고 풀타임 선발로 활약할 선발투수를 찾던 삼성의 구미를 당겼다.
지난해 SK에서 뛰며 14경기 6승 4패 평균자책점 3.81을 기록한 고든은 SK 측이 이닝이터를 원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위가 좋고 커브의 각도가 국내 프로야구 역대급에 꼽히는 투수인 만큼 계투진이 양과 질적으로 풍부한 삼성에서 선발로도 제 몫을 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류중일 감독은 고든을 선택한 데 대해 “계투진이 버티는 만큼 고든이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노리는 SK는 마리오 산티아고에 이어 KIA에서 3시즌을 활약한 아킬리노 로페즈를 영입했다. 도미니카 윈터리그서 SK만이 아닌 한화 등 타 구단의 레이더망에도 포착되었던 마리오는 상대적으로 젊은(1984년생) 데다 구위가 뛰어나 체력면에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경기 마다 직구 제구 기복이 심한 점은 분명 보완해야 한다.
로페즈는 2009년 14승을 올리며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등 3년 간 29승으로 검증된 외국인 투수. 특히 3년 간 총 510이닝을 던지며 ‘이닝 이터’의 면모를 비췄다는 점에서 SK에 더없이 매력적인 투수로 다가왔다. SK와 삼성 모두 외국인 투수들에게 선발로서 활약을 기대 중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데려온 좌완 셰인 유먼은 윈터리그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대만에서 활약해 동양 야구에 대한 적응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고 직구 제구가 안 정적인 데다 최고 151km를 던지는 등 직구 평균 구속도 145km대로 준수하다. 지난 시즌 15승을 올린 뒤 경찰청 입대를 택한 장원준의 공백을 막기 위해 선택한 가장 좋은 카드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롯데가 유먼과 최종 계약하기까지 KIA와 두산 베어스, 소프트뱅크, 시애틀이 쟁탈전을 벌였다는 점은 유먼의 가치가 의외로 크다는 점을 증명한다.

KIA가 선택한 앤소니 르루와 알렉스 그라만은 시즌 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완 선발로 기대를 모으는 르루는 사실 2010시즌 후 로만 콜론을 대신해 KIA의 새 외국인 투수가 될 뻔 했으나 진로를 소프트뱅크로 급선회했던 바 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소속으로 르루가 올린 성적은 1군 단 4경기 출장(평균자책점 1.80)에 그쳤다. 2009년 KIA 소속 13승 전력의 릭 구톰슨은 그래도 일본에서 4시즌 27승을 올린 투수였다.
2008시즌 세이부 소속으로 31세이브를 올리며 퍼시픽리그 구원왕이 되었던 그라만은 2009년 어깨 수술 전력이 마음에 걸린다. 일본에서의 6시즌 활약 덕택에 빠른 퀵모션을 자랑하며 주자 견제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아직 예전만큼의 묵직한 공은 뿌리지 못하고 있다. 르루와 글라만에 대해 KIA 측이 ‘기대에 못 미친다’라는 평가가 나올 시 바로 교체 작업에 들어갈 채비를 갖춘 이유다.

두산은 더스틴 니퍼트의 짝으로 2006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26홀드(당시 리그 3위)를 올리는 등 이름값이 높은 스콧 프록터를 선발했다. 지난해 애틀랜타-양키스서 계투 출장했으나 장타 허용이 많았던 프록터는 손쉽게 150km대 초중반 직구를 뿌린다는 점이 강점이다. 김진욱 감독은 “계투로서 마인드와 경험을 갖췄고 묵직한 구위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라는 말로 마무리 프록터에 대한 기대감을 비췄다.
지난 시즌 중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입단해 ‘한국의 K-로드급’ 활약을 펼쳐준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와 재계약한 한화의 선택은 배스. 당초 피츠버그-애리조나 출신 좌완 자크 듀크를 염두에 두었으나 계약 합의에는 실패했던 한화는 2008년부터 3년 간 메이저리그서 9승 7패 평균자책점 5.10을 기록한 배스를 영입했다. 최고 152km의 포심에 투심, 커브 조합이 좋은 배스는 10승 이상이 가능한 선발 요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좌타 외야수 코리 알드리지를 퇴출시킨 넥센은 좌완 앤디 밴 헤켄을 영입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으나 마이너리그 통산 316경기 107승 75패 평균자책점 3.89을 기록한 ‘마이너리그 베테랑’. 파워피처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콜업은 받지 못했으나 기본적인 제구력을 갖췄고 타점이 높은 투구폼을 보여주는 투수다. 넥센은 헤켄에게 2010년 애드리안 번사이드가 해내지 못했던 안정적인 좌완 이닝이터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경력자 2명을 포함해 새 둥지를 찾은 10명의 외국인 투수들. 각 팀들이 대체로 선발 요원의 기대치를 주입하는 와중에 두 명의 새 외국인 투수는 마무리 보직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속설을 증명시키는 2012년 외국인 투수 인선에서 과연 어느 팀이 재미를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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