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감독, 김창훈 공 맞고도 웃은 이유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1.31 14: 31

“얼음찜질은 정말 오랜만에 하는 것 같다. 이거 빨리 나아야 되는데. 안 그러면 부상자로 분류되어서 조기귀국하게 된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이 전지훈련 도중 투구에 왼 팔뚝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그러나 감독은 타박상 부위를 얼음찜질로 식히면서도 ‘허허’ 웃었다. 김 감독을 공으로 맞춘 장본인은 바로 올 시즌 팀의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큰 활약을 해줄 사이드암 김창훈(27)이다.
김 감독은 31일(한국시간) 전지훈련장인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투수들의 하프피칭을 감상했다. 그러다 김 감독은 김창훈의 공을 받던 포수 근처로 다가가 좌타석에 들어섰다. 아직 완전한 불펜피칭은 아니었으나 라이브피칭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감독의 배려였다.

그러나 그 순간 김창훈이 몸쪽으로 던진 공이 김 감독의 왼쪽 팔뚝에 맞고 말았다. 졸지에 부상병(?)이 된 김 감독은 트레이너에게 얼음찜질을 받은 뒤 밖으로 향해 담배를 태우며 허공을 주시했다. 얼음찜질을 받는 20분을 채우기 위해서다.
“전지훈련 출발 전 3일 이상 회복 기간이 걸리는 부상자의 경우 훈련 진전도와 몸 상태 완벽화를 위해 조기귀국 시키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이거 내가 조기귀국하게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 김 감독. 그러나 이내 김 감독은 자신에게 타박상을 입힌 김창훈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올해 창훈이가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중요한 순간 상대 좌타자를 공략하기 위해서 창훈이가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믿음직하게 뛰어줬으면 한다. 피안타율 1할대가 아니라 피출루율 1할대, 그 미만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천안북일고 2학년 시절부터 고교 최고 좌완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2004년 연고팀 한화에 1차지명(계약금 4억2000만원)으로 입단했던 김창훈. 그러나 그는 고교 시절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팔꿈치-어깨를 모두 수술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09년 11월 선배 조규수(방출)와 함께 유격수 이대수의 반대급부로 두산 이적했다. 공익근무 중이던 2007년에는 어머니마저 암으로 잃으며 야구 인생의 위기를 맞았던 김창훈이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유망주들이 대다수인 만큼 가능성있는 젊은 투수들을 눈여겨보고 있는 김 감독. 특히 김창훈은 자신의 지도 아래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좌완 사이드암으로 전향했고 지난 시즌 가능성을 비췄다. 기록은 27경기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6.27에 불과했으나 시즌 중후반부터 두산 투수가 좌타 거포를 삼진으로 일축했다 하면 어김없이 김창훈이었다. 김창훈의 좌완 사이드암 전향을 위해 김 감독은 투수코치 시절 김창훈에게 “사이드암 투수의 투구폼을 거울에 비춰 익혀라”라고 지도했던 바 있다.
“나 또한 좌타자가 많지 않던 현역 시절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분석해야 할 때 우타자를 거울에 비춰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기억이 나서 창훈이에게 이야기해준 바 있다. 확실히 창훈이가 이번에는 예전보다 더욱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더라. 그러나 1군은 단순히 ‘열심히 해서’ 되는 무대가 아니다. 이제는 정말 ‘잘해야’ 한다”.
그와 함께 김 감독은 김창훈에 대해 “원포인트릴리프라고 마구잡이 등판시키고 싶지는 않다. 불펜 대기 시 투구수 등을 고려해 관리하면서 출격시키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다. 어깨와 팔꿈치 모두 칼을 댔던 투수인 데다 팀의 필요 선수인 만큼 관리해주겠다는 이야기다. 대기시간 20분이 지나 얼음을 뗐을 때도 아직 김 감독의 환부는 붉게 부어올라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래도 웃었다. 기대한 선수가 시즌 들어 감독의 생각에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김창훈이 야구를 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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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리아(애리조나)=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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