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선후배,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잖아.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2.02.26 11: 49

[이윤정의 공감 TALK] 개그맨들이 여럿 나오는 토크쇼가 등장하면 이제 보는 사람들도 은근히 긴장이 된다. 그들이 어느 쇼에 나와서나 이야기하는 개그맨실의 ‘군기’가 시청자들에게도 학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그맨실은 유난히 다른 연예인 직종보다도 선후배 관계가 군대식인 듯하다. TV에서도 일단 선후배가 한자리에 앉으면 누가봐도 티가나게 후배는 선배의 눈치를 살피며, 선배는 그런 대접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표정이다. 그들의 말 속에서 짐작해 보면, 커피 심부름이나 단체 기합 같은 건 기본이며,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일도 흔치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2일밤 KBS TV ‘해피 투게더’도 그런 전형적인 개그맨 선후배 관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980년대 개그맨 대선배 오재미에서 90년대 선배 남희석, 이후 김숙과 김준호 그리고 신봉선, G4까지 몇 세대가 한자리에 모인 이 쇼에서는 많이 모인 개그맨들 만큼이나 킬킬거릴 웃음거리도 많았지만 어쩐지 유쾌하지 않아 보이는 개그맨실의 문화가 엿보여서 불편하기도 했다. 남희석은 오재미가 말할 때 마다 유난히 크게 웃으려고 애쓰고, 발랄해야 할 G4가 오재미의 프로필을 희화화할 때 누구할 것 없이 선배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눈치를 살폈다.오재미는 ‘재미있게 맞는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다큰 후배들의 뺨을 철썩철썩 때리고 후배들은 맞으면서도 웃었다. “선배 김국진이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고, 지방공연을 같이 뛴 후배들에게도 출연료를 나눠 주어서 유달리 돋보였다” 라거나 “다른 방송사에서 온 김준호가 이유없이 미워 90도 인사에도 못본 채 하고 지나갔다” 같은 출연자의 말을 통해서도 이들 개그맨들의 선후배 사이는 배려보다는 권위와 복종이 더 크게 보였다.
그에 비한다면 1일 밤 MBC TV의 ‘라디오 스타’는 선후배들이 합심해서 우울증에 빠진 유세윤을 위로하는 컨셉으로 뭉쳐, 오랜만에 참신한 개그맨 집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그들도 킬킬대며 옛날에 선배에게 맞았던 이야기를 하고 말도 안되는 선배의 억지도 부린 과거도 이야기 했다. 그래도 온몸을 다해 애창곡 ‘낙인’을 부르는 김준호, 그런 김준호에게 물에 적신 휴지로 일격을 맞고도 (다른 때 같으면 정색을 하고 화냈을 그가) 허허 웃고 넘어간 김구라, 눈물을 흘리며 우울증의 고통을 숨기지 않은 유세윤에게 “우린 정말 서로를 아낀다”며 우정을 확인해주는 옹달샘 트리오, “나 또한 비슷한 사정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고백을 한 김구라나 그 심정을 따뜻한 표정으로 공감해준 김국진 등의 모습이 어우러져 훈훈하고 화기애애 했다.

코미디나 개그가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은 가장 먼저 기성의 권위를 깨트리는데 있지 않을까. 풍자나 모사, 패러디는 모두 거대한 권위를 조롱하는데서 출발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걸 생명으로 여기는 개그맨들은 모순되게도 가장 권위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은 늘 “개그는 팀웍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권위적인 팀웍보다는 후배가 더 자유롭고 발랄하고 멋대로 까부는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팀웍이 더 필요할 텐데. 권위로 굳은 몸과 마음보다는 자유롭고 따뜻한 환경에서 뛰어난 창조력이 나올 것이다. 더 발랄한 개그와 코미디를 위해서는 개그맨실의 분위기도 더 발랄해지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dalcomhan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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