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야구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즐겁고 행복합니다”.
한 때 그는 국가대표 2루수였다. 다른 이들이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시프트를 펼치며 왼손 타자들의 우전 안타성 타구를 범타 처리하고 빠른 발로 다이아몬드를 휘저으며 ‘발야구’의 선봉 노릇을 했다. 그러나 지난 3년 간 그는 연속된 부진으로 인해 제 자리를 후배에게 내주고 말았다. 연봉도 어느새 반토막이 났다. 재기를 노리는 두산 베어스 2루수 고영민(28)이 그 주인공이다.
고영민은 지난 시즌 93경기 2할1푼 3홈런 16타점 6도루에 그치고 말았다. 2009시즌부터 시작된 고영민의 부진은 2011년에도 그대로 이어져 6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에 실패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영민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 후배 오재원(27)은 46도루로 새앵 첫 타이틀 홀더가 되는 동시에 수비 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09년 1억6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고영민의 2012시즌 연봉은 8000만원으로 절반까지 깎여 나갔다. 2007년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 승선 등 한때 국가대표 2루수로 손꼽혔던 고영민이 다시 경쟁의 무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만난 고영민은 현재 훈련 페이스를 다소 늦추고 있다. 자신을 지난해 줄곧 괴롭혔던 옆구리 근육통으로 인해 잠시 치료에 힘쓰고 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약간의 담 증세가 있어 훈련을 쉴 뿐이다. 김진욱 감독 취임 후 두산 선수단은 약간의 이상이 보일 시 곧바로 트레이너에게 환부를 보여주고 즉각적인 치료에 나서고 있다.
“지난 3년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못한 것이니까요. 지난 시즌에는 등번호도 바꾸는 등 안 되다 보니 뭐라도 변화를 줘서 새롭게 뛰고 싶었는데 잘 안 되네요”. 지난해 3번을 달고 뛰던 고영민은 1년 만에 다시 14번으로 배번을 바꿔 달았다.
“공수 양면에서 중점을 둔 훈련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해야 팀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지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지금은 약간 담 증세가 있어 쉬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미리 트레이너진에 이야기해야 부상이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운동할 수 있는 체력적인 여건을 기본적으로 만들어 둬야지요”.
지난해 12월 아내 서혜연씨와 지각 결혼식을 올린 고영민은 슬하에 아들 태원군을 두고 있다. 우리 나이로 두 살이 된 태원군과 아내가 간절히 보고 싶은 모양인지 고영민은 “태원이가 엄마, 아빠하면서 옹알이를 한다. 너무 많이 보고 싶다”라며 ‘아들 바보’ 모드로 잠시 변하기도 했다.
뒤이어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한때 룸메이트였을 정도로 절친한 후배인 오재원에게 주전 2루수 자리를 내준 일이다. 고영민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천재형 2루수였다면 오재원은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근성을 불태우는 파이터형 2루수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절친한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데 대해 고영민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재원이가 잘했으니 주전 선수로서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프로 세계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요.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결과로 이야기해야지요. 주전 경쟁에서 이기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로웠던 3년을 보냈기 때문인지 고영민은 잠시 힘겨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올 시즌 고영민은 수치적으로 좋은 목표보다 심적인 안정, 그리고 팀이 원하는 순간의 활약을 바랐다. 특히 마음처럼 야구가 안 되다 보니 위축되었던 지난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좋은 개인 기록을 올린다면 좋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팀입니다. 팀이 필요할 때 이기고 상승세를 탈 수 있는 도화선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간은 야구가 잘 안 되어서 기분도 우울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재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정말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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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리아(애리조나)=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