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롯데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롯데팬이 안 됐다’.
지난 해 사직구장에서 ‘부산 갈매기’한 분이 들고 있는 피켓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병대 표어를 본딴 문구엔 롯데팬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그라운드엔 일부 관중이 던진 페트병과 이물질이 널려 있었지만 관중석에서 이 피켓을 번쩍 들고 자제하자는 의미를 전하는 모습은 점잖은 많은 롯데팬들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프로야구가 출범 30년을 보내면서 국내 최고 인기 종목으로 떠오르며 온가족이 즐기는 건강한 여가선용의 활력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제는 야구 팬들도 성숙된 모습을 보일 때가 됐습니다.

그동안 프로야구에선 일부 팬들의 승부에 집착한 과격한 시위로 많은 팬들과 선수단에 상처를 주는 행태가 종종 나타났습니다. 해태-삼성의 1986년 한국시리즈 중 대구구장에서 빚어진 타이거즈 구단버스 방화 사건, 1990년 8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해태-LG의 경기 중 일어난 양팀 관중 1천여명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패싸움을 벌여 경기가 1시간7분간 중단된 사건 등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대표적인 팬들의 추태였습니다.
야구장 정문 앞에서 벌어진 감독 청문회는 그보다는 추한 모습이 덜하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피해를 남겨 씁쓸합니다. 작년 8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두산전에서 트윈스가 패하자 경기 후 500여명의 팬들은 중앙 출입구에서 "박종훈 감독 나와!" 등을 외치며 박종훈 LG 감독 청문회를 요구했습니다. 박 감독이 김기태 수석과 함께 확성기를 들고 팬들 앞에 나서자 일부 팬들은 박종훈 감독에게 오물을 투척했습니다.
박 감독은 잠시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중앙 출입구로 나서 팬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성적 부진에 대한 사과를 했습니다. 일부 팬들의 청문회 요구는 그 전에 두차례에 걸쳐 있었는데 선수들과 충돌도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을 본 어떤 LG 팬은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최초의 9년 연속 4강탈락. 최초의 30승 선착팀 4강탈락 등등의 각종 불명예 양산한 2011년, 물론 돌종훈의 잘못이 맞다. 그런데 팬들은 잘못 없나?
청문회...뭐 좋다. 할만했고 해서 잘만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8월 10승1무11패, 9월 5승13패. 8월의 돌종훈과 9월의 돌종훈은 다른 사람인가? 9월의 급락의 원인에 청문회가 없을 수 있을까?
감독 탓하고 프런트 탓하고 남 탓하지말고 우리 팬들의 잘못을 먼저 돌아보자. 9년 연속 4강 못간데는 분명 자기의 잘못은 안돌아보고 남 탓만 해 온 우리 팬들의 문제도 없지 않다.
감독? → 김재박 반드시 데려와야한다고 팬들이 난리쳤고 결국 데려왔다. 결국 팬들의 원성만 사다 자기 경력에 오점만 남기고 떠났다. (이광환-이순철-양승호대행-김재박-박종훈)
프런트? → 팬들이 사달라는 FA선수는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다 사줬다. 잡아달라는 FA선수 잡는 것은 기본. 조공트레이드로 필요한 선수 수혈까지. 결국 그 선수들 자기 경력에 오점만 남기고 먹튀로 둔갑. (송신영,김성현-이택근-정성훈-이진영-조인성(잡기)-라뱅(잡기?)-박명환-마해영-기타 등등)
냉정하게 얘기해서 우리 프런트... 욕먹을 이유 전혀 없다. (유일한 잘못=야신감독님 내쫓고, 프렌차이즈 3명 내쫓은 것...ㅠㅠ)
왜?왜?왜? 멀쩡한 감독과 멀쩡한 선수가 하얀 줄무늬 유니폼만 입으면 망가지는 것일까? 우리 팬들이 안바뀌면 우리 팀도 안바뀐다. 청문회... 그렇게 하려면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었다.
한창 중요한 시점에 다시 치고 올라가려면 청문회 해야 한다고 외쳤던 팬들. 결국 9월 5승13패로 4강 탈락의 전주곡을 울려주고 말았으니...
이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팀에게는 청문회가 아니라 더욱 간절한 팬들의 애정이 어리고 진심어린 간절한 응원이 더욱 절실했다.’
위의 네티즌 견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제 생각은 이런 분들이 야구장에 꽉 찼으면 좋겠습니다. 감독 청문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MBC 청룡이 LG 트윈스로 변신한 1990년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팀이 바뀌고 첫해 백인천 감독 시절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 해부터 팀 성적이 6위로 떨어지자 팬들은 술렁였고 이광한 감독이 팀을 맡은 92년도 7위로 추락하자 잠실구장 정문에서 경기 후 선수단을 기다렸다가 야유를 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청문회로는 사상 처음으로 열린 1988년 11월 5공 비리 조사 국회청문회 여파가 과격하게 변형돼 야구판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트윈스 감독이었던 이광환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은 “잠실구장을 빠져 나가기 힘들 정도로 정문 앞에 수백명이 구단버스를 가로막고 기다리고 있다가 욕을 하고 야유를 퍼붓는데 두렵기까지했다. 나중에는 청문회를 하자면서 다중의 힘으로 나오는데 난감했다.”면서 “시즌 중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선수 운영이나 작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고 화내는 팬들을 달래는데 신경 쓰게 돼 내 처지가 한심했다.”고 회상합니다.
LG의 감독 청문회 사태는 금세 다른 구단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열기가 넘치는 롯데 팬들도 팀 성적이 추락하면 감독 청문회를 요구해 사직구장 앞이 시끄러웠습니다.
한화 유승안 감독은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2004년 5월 28일 최초로 팬들과의 공개 청문회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구단에 너무 많은 불만을 갖고 계신 것 같고 감독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청문회 형식도 좋으니 얼굴을 맞대고 궁금증을 풀어버릴 기회를 갖자.”고 제안해 5월 30일 대전구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팬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20명의 팬들과 만났습니다.
유승안 감독은 팬들의 불만을 방치했다가는 오해의 골만 깊어질 가능성이 커 이런 공청회를 슬기롭게 연 것이지만 시즌 중에 이런 일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게 경기를 준비할 시간을 뺏는 것이고 상처만 안겨 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우리 사회가 분노 표출이 많아지고 과격해지고 있으나 프로야구만큼은 화를 내거나 비방만 쏟아붓는 대신 유머스럽고 성숙된 모습을 보이는 팬들이 중심이 돼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