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선수. 한 해 반짝했다가 그 다음에는 미미한 존재로 머물고 있는 선수. 근래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에 꼭 맞는 선수가 있다. KIA 타이거즈 내야수 이현곤(32)이 그 주인공이다.
이현곤은 2007년 3할3푼8리의 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2002년 프로에 입문했으나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던 이현곤은 2007년을 기점으로 주전 내야수로 인정을 받았다. 날카로운 타격과 함께 3루와 유격수로 뛰며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 공격력으로 기대에 부응치 못했다. 이제는 자칫하면 1군 주전자리까지 위협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렇게 평범해졌던 이현곤이 새로 부임한 ‘선동렬호’와 함께 달라졌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고향팀 KIA 타이거즈로 돌아온 선동렬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체제는 이현곤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특히 야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이순철 코치는 부임하자마자 이현곤을 만났다. 이전 방송해설할 때부터 이현곤을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이 코치는 이현곤과 면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 코치는 “타격폼이 타격왕을 할 때와는 달라졌다. 무슨 까닭이 있었냐”고 물었고 이현곤은 “이전 타격폼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그동안 수정을 해왔다”고 답했다.
이현곤의 대답을 들은 이 코치는 “물론 예전 타격폼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폼으로도 타격왕까지 하지 않았냐. 예전 타격폼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 폼이 무슨 상관이냐. 공 맞히고 안타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며 이현곤에게 예전 잘 나갈 때 타격폼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이현곤은 “4년만에 처음으로 내 타격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예전 타격폼을 찾기 위해 겨울내내 힘을 썼던 이현곤은 서서히 본래 모습을 찾고 있다. 여기에 선동렬 감독은 이현곤을 전격 1루수로 기용하며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토록 하고 있다. 주전 1루수 최희섭이 제대로 몸상태를 만들지 못한 채 트레이드 파동 등을 겪으며 혼란해지자 스프링캠프부터 이현곤에게 본격적으로 1루수 수업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8월 데뷔 첫 1루수로 기용됐던 전력을 살려 올 시즌부터는 1루를 비롯해 3루, 유격수까지 볼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12일 넥센과의 연습경기에서 이현곤은 1루수에 6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경기 끝까지 뛰었다. 비록 삼진 1개를 포함해 4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안정된 수비력과 끈질겨진 타격을 보여줬다. 상대 넥센 투수들의 결정구를 커트해내는 등 예전 타격폼을 되찾으며 다시 적응해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 후 이순철 코치는 “현곤이가 근년에는 타격훈련 때 타구가 펜스 끝까지도 못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담장을 넘기는 타구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면서 “물론 현곤이의 예전 타격폼이 퍼져나오는 스윙으로 더 나은 타격을 위해 이전 코치들의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윙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곤이는 컨택 능력과 임팩트가 좋다. 예전 타격폼으로 많은 안타를 칠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주전 3루수에서 1루수까지 내야 전천후가 되고 있는 이현곤이 올 시즌 KIA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사 중 하나이다. 과연 예전 타격왕의 위용을 되찾을 것인지 지켜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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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애리조나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