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프로야구 승부조작이다. 워낙 방대한 경우의 수와 변수 때문에 '설마'했던 프로야구가 '첫 회 볼넷'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등장하자 당황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대구지검 강력부(부장 조호경)에 따르면 프로배구 승부조작 관련 브로커가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첫 회 포볼' 등을 놓고 2명 가량의 현역 투수들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으로 들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프로야구 구단과 투수가 지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프로축구, 프로배구와는 달리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1919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주전 8명이 연루돼 신시내티 레즈에 고의로 패한 '블랙삭스 스캔들'이 가장 유명한 승부조작 사건이다. 하지만 여러 명이 동원돼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것이 프로야구 승부조작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한 투수가 특정 타자에게 홈런을 맞기 위해 노력해도 쉽지 않다. 투수와 타자 최소 2명이 서로 입을 맞춰야 하고 무조건 직구를 한가운데만 보고 던진다 하더라도 타자가 홈런을 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회 볼넷'은 승부조작의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포수, 타자와 관계 없이 투수 한 명만 포섭을 해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직 의혹 단계이긴 하지만 상황에 대한 조작만으로도 충분히 검은 돈이 오갈 수 있는 개연성이 드러난 셈이다. '출루시 주루사', '2회 서서 삼진' 등의 조작도 가능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 구단 프런트는 "승부를 조작한다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조작에 가깝다"면서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만큼 선수단 조사에 나서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말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또 첫 회 볼넷은 사실상 선발 투수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 구단 선발 투수는 대부분 고액 연봉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만약 돈이 오고 갔다면 적은 금액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KBO 관계자도 "선발 투수들에게 접근을 했다면 꽤나 돈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것(첫 회 볼넷)이 사실이라면 승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경기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는 승부조작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조작이 너무 쉬운 스포츠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고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 수긍하고 넘어간다. 한 장면을 놓고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종목이 바로 야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곧 본인이 자백을 하거나 돈이 오간 장부 같은 확실한 물증이 나와야 조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황만으로는 승부조작으로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첫 회 볼넷'은 안그래도 부담이 많은 선발 투수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전망이다. 아무리 좋은 선발 투수라도 초반 제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흐름의 게임인 야구는 초반 선취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첫 회 볼넷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KBO측은 "오늘(14일) 오전 구단들에 이 상황을 선수단에 인지시켜 줄 것을 요청, 선수단 관리에 신경을 써달라고 말했다"면서 "선수들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으로 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확실히 밝혀서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연히 그런 일(승부조작)이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하고 있다. 각 구단에 혹시라도 모르니 선수들과 개별 면담을 해보라고 전달은 했다"며 "불법 사이트가 있고 그 속에 야구 종목이 있다면 브로커의 유혹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고액 연봉이 아닌 선발 투수들이 개입됐을 수 있고 또 스타급 투수가 직접적인 승부와 직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용돈벌이로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첫 회 볼넷'이 '소 도둑'으로 가는 '바늘 도둑'을 양산시킬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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