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가 승패까지 영향을 미칠까요?"(선수) "존폐까지 논의할 수 있다."(구단)
옳지 않은 일이라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조작 의혹 파문을 바라보는 선수들과 구단들의 체감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 13일 대구지검 강력부(부장 조호경)에서 프로배구 승부조작 관련 브로커 김모 씨가 "구속된 브로커 강모 씨가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첫 회 포볼' 등을 놓고 2명 가량의 현역 투수들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으로 들었다"고 진술하면서 시작된 경기조작 의혹이다.

그런데 갑자기 A구단 B투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B투수가 브로커로부터 경기조작 제안을 받았으나 바로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거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브로커와의 '접촉'이었다. 이는 브로커가 선수와의 접촉을 시인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B투수는 "브로커와의 접촉조차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C구단의 구체적인 이름이 나왔고 이어 D투수와 E투수의 실명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검찰 조사가 공식적으로 있기도 있기 전에 벌써 관련 투수들이 "아니다"고 부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앞서에는 한 보도전문 케이블 방송이 은퇴 선수를 사칭한 익명의 제보자와의 인터뷰를 검증없이 내보내기도 했다.
이에 해외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이던 한 선수는 "그런데 볼넷을 주는 것이 승부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그렇게 큰 범죄가 되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다른 구단 선수는 "몇몇 선수들이 한 일을 가지고 언론이 야구계 전체의 큰 일인 것처럼 너무 부풀리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구단 포수 역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지만 그게 그 정도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2년 시즌 선수등록 마감을 하며 표준계약서와 함께 받은 서약서에 대해서도 "그런 것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난처해 하기도 했다. 서약서에는 경기조작 등 부정행위를 선수가 할 경우 모든 처벌을 감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반면 구단의 반응은 심각하다. 당장 모 구단 고위관계자는 "그룹에서 (경기조작) 소식을 듣고 굉장히 노하셨다"면서 "우리 선수가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경우 구단의 존폐 여부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역시 "경기조작이 사실로 밝혀지면 대만처럼 구단이 축소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경기조작 의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선수 입장에는 스프링캠프라는 특성 때문에 국내 언론을 자주 접할 수 없고 주위로부터의 연락이 적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볼넷 1개가 경기의 승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말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브로커가 이런 선수들의 마음을 노릴 수 있는 여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문제는 구단의 모그룹이 아예 존폐를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보고 있는 범죄가 경기조작이라는 것이다. 경기조작은 스포츠 정신에 반하는 만큼 그룹 이미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국내 구단의 태생이 모기업 이미지를 위해 탄생한 구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구단이 사라지면 리그가 축소되고 급기야 영향은 선수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칠 수 있다.
경기조작은 형법 제314조에 따라 대가를 받지 않거나 의도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되며 그 자체만으로도 영업방해죄가 된다. 국민체육진흥법에도 위반된다. 국민체육진흥법 제47조에 따르면 경기조작은 ▲ 복권 대상 경기의 공정성을 해친 행위를 한 경우 ▲ 복권 대상 경기에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한 경우 ▲ 복권 대상 경기의 선수·지도자·심판·경기단체·임직원 등이 복권을 구매·알선·양수하는 경우다.
당연히 도박죄다. 형법 제246조에 의거 승패를 떠나 경기를 조작한 것만으로도 성립이 된다. 여기에 형법 제347조에 따라 승부조작에 관여한 선수 등이 복권도박을 통해 수익을 취득한 경우는 사기죄가 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경기조작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강경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규약과 서약서에 따라 영구제명도 할 수 있다. 실제 야구규약 제140조 [부정행위]에 따르면 승패 뿐만 아니라 소속 구단이 직접 관여하는 경기에 대해 도박을 하는 경우도 포함하고 있으며 이 경우 총재가 영구 실격 선수로 지명할 수 있다.
이런 법적인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볼넷 하나가 경기 전체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투구 1개 때문에 코칭스태프는 전체 경기의 흐름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경기 운용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선수들이 좀더 진중하고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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