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희선 인턴기자] 유구무언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다. 마지막까지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감독은 끝끝내 사실로 밝혀진 결과 앞에 침묵만을 남겼다.
남자배구에 이어 여자배구까지 승부조작 파문에 휩싸이며 배구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특히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선수 2명이 지난 15일 밤 대구지방검찰청 강력부(조호경 부장검사)로 소환돼 혐의를 인정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설마설마했던 여자배구도 승부조작의 거센 풍랑에 휩쓸렸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구단의 자체적인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수들과 면담을 거듭하고 실명이 거론된 선수에게도 계속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절대 자기는 아니라고 하더라. 못 믿겠다면 혈서라도 쓰겠다고 펄펄 뛰었다"며 믿었던 선수에 '뒤통수'를 맞은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차해원 흥국생명 감독 역시 "이미 몇 번의 면담을 거쳐 선수들과 이야기를 마친 상황이다. 실명이 거론된 선수와도 이야기를 나눴다"며 "본인들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다고 하니 감독으로서 믿어줘야하지 않겠나"고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왔다.
그러나 믿음은 허무한 결과를 낳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승부조작 혐의를 시인한 흥국생명 선수 2명에 대해 16일 현대건설전부터 경기 출전을 제한키로 했으며 대구지검의 공식 수사결과 발표 후 상벌위원회를 통해 최종징계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문제는 이후의 대응이었다. 이처럼 물망에 올랐던 선수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흥국생명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구단 프런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단과 감독만이 경기장에 나타났다. 심지어 이번 사건에 연루된 2명의 선수가 경기를 뛰기 위해 동행했다가 황급히 빠져나가는 등 상식 밖의 일이 연달아 벌어지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에 흥국생명은 17일 이번 사태에 늑장 대처한 것에 대해 '선수 보호가 최우선이었다'며 '가담 선수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15일 검찰 조사 후 대구지검 관계자의 말을 듣고 남자에 비해 가담 사실이 경미하고 20대 여성 선수들의 불안한 심리에 따른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고자 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부 조작 사실을 인정한 선수들을 경기장에 데려온 행동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결국 우울한 입장에 처한 것은 차해원 감독이었다. "선수들과 같이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선수가 경기장에 함께 왔는지 그 당시엔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동행 여부를 몰랐다고 이야기한 차해원 감독은 두 선수가 대구지검에 다녀온 사실은 물론, 승부조작에 연루된 혐의를 인정했다는 일마저 나중에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외부인처럼 보일 정도다.
이는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신영철 감독은 "선수의 잘못에 대한 판단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며 "소식을 듣고 선수에게 승부조작에 가담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답했다. 감독의 입장에서 소속 선수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남은 경기에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구단이 먼저 감독에게 자세한 내용을 전했고 대응 방법을 강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해원 감독이 사실 여부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혐의가 있는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려고 했던 것이 누구의 의사였든지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자체적으로 면담에 나서는 것밖에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지만 선수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결국 차해원 감독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죄송하다'뿐이다.
감독들은 배구인으로서 누구보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철저히 밝혀내 철저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의심 받는 선수들의 결백을 끝까지 믿어줘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을 조율해야 하는 것이 구단의 역할이다. 만천하에 드러난 승부조작 사태를 앞두고 '선수들을 믿겠다'고 강조해왔던 차해원 감독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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