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개인 통산 400골' 위대한 역사 쓰다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2.21 17: 03

[OSEN=김희선 인턴기자] 베르나베우의 스타이자 챔피언스리그의 제왕, '마드리드의 전설' 라울 곤살레스(34, 샬케04)가 개인 통산 400호 골을 터뜨리며 아직 자신의 전설이 끝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라울은 20일(이하 한국시간) 샬케04의 홈구장인 벨틴스 아레나서 열린 '2011-2012 분데스리가' 22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 홈경기서 전반 10분 만에 골을 뽑아내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라울이 터뜨린 골은 팀의 결승골이자 자신의 통산 400호골이었다.
이날 경기로 통산 925경기 출전에 400호골이라는 기록을 작성한 라울은 18년의 시간 동안 줄곧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 1994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 클럽 역사상 최연소 기록인 17세 4개월의 나이로 데뷔한 이후로 줄곧 마드리드의 스타로 군림했던 라울은 16년 동안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특히 챔피언스리그는 '챔스리그의 제왕'이라는 별명답게 데뷔 이래 매년 출장하며 역대 최다출장(142경기) 기록과 역대 최다골(71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라울이 빛을 발한 것은 클럽 무대뿐만 아니었다. 라울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이후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국가대표로 활약, 통산 102경기서 44골을 터뜨렸다. 다비드 비야(바르셀로나)가 47골을 터뜨리며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스페인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 역시 라울의 것이었다.
그러나 라울의 진가는 단순히 '골을 잘 넣는 공격수'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마드리디스타들은 라울을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7번'으로 기억한다. 라울은 팀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고 팀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다.
독불장군형 스트라이커라기보다 동료들과 조화를 이뤄 플레이를 완성했던 라울은 뛰어난 개인기나 빠른 발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득점 감각과 팀을 위한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라울은 최전방부터 후위 미드필드까지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분전하는 대표적인 선수였다. '라울리토'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 그 자체인 라울은 한 클럽의 아이콘이 어떻게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위대한 스타로 자리잡는지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와 이토록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레알의 상징'이지만 갈락티코 정책의 시작과 함께 라울의 가치는 다르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스탯이 눈에 띄게 저하됐고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카림 벤제마, 카카 등 갈락티코 2기가 시작된 2009-2010시즌 후반부터 라울은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기에 조세 무리뉴 감독의 부임 이후 팀내의 노장을 정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라울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무적함대서 영혼의 투톱을 이뤘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마저 은퇴하면서 라울 역시 은퇴의 기로에 서게 됐다. 라울이 기록한 부진한 스탯에 '폼이 내려갔다'거나 '퇴물'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라울은 자신의 실력이 건재하다는 확신 하에 은퇴 대신 정들었던 클럽을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분데스리가 샬케04로 이적한 라울은 분데스리가에서 컵대회 포함 32골을 터뜨리며 자신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라울이 써내려간 개인 통산 400골의 위대한 역사가 뜻깊은 이유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리버풀 레전드이자 축구계의 명감독으로 유명한 빌 샹클리가 남긴 말이다. 클럽을 넘어 축구계의 또 하나의 전설로 기록될 라울 역시 400호골로 자신의 클래스를 스스로 입증했다. 화려한 별들이 넘쳐나는 축구계의 갈락티코, 그 가운데서도 라울의 클래스는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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