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전일수, 자존심을 건 100m 경주 승자는?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2.21 14: 24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민호가 생각지도 못 했던 가욋돈 3만 엔을 손에 넣었다. 자존심을 건 혼신의 질주의 보상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날 롯데가 훈련하고 있는 가고시마 가모이케 구장에 KBO 조종규 심판위원장을 포함해 5명의 심판위원이 찾아왔다. 심판들 역시 프로야구 구단이 있는 전지훈련지에 합숙훈련 캠프를 차리고 본격적인 시즌 준비를 한다. 심판들은 롯데 투수들이 불펜피칭을 할 때 포수 바로 뒤에서 볼 판정을 하는 연습을 했는데 심판이나 롯데 투수들이나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이다.
불펜피칭이 끝나고 오전 훈련이 마무리 되어 갈 때쯤 조종규 심판위원장이 강민호(27)와 전일수(44) 심판을 불러 세우고 내기를 제안했다. 강민호와 전일수 심판이 100m 경주를 벌여 이기는 쪽에 상금을 주겠다는 것 이었다.

강민호는 롯데에서 가장 발이 느린 축에 속한다. 강민호 본인은 "100m를 13초 안으로 끊는다"고 했지만 주위 동료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홍성흔 역시 강민호와의 달리기는 승리를 자신했다. 반면 전일수 심판은 심판위원 가운데 가장 발이 빠른 축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LG 트윈스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투수 출신이다. 그러나 둘의 나이 차만 17살, 게다가 현역 선수와 심판의 달리기는 어쩌면 결과가 정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강민호로서는 이겨야 본전, 지면 굴욕인 불리한 조건의 내기였다. 그렇지만 조 위원장은 "이기면 3만 엔(한화 약 42만 원)을 주겠다"며 강민호를 부추겼고, 결국 선수와 심판의 자존심을 건 경주가 성사됐다. 이에 롯데 덕아웃에선 내기를 거느라 부산해졌다. 일부 롯데 선수들은 강민호가 아닌 전일수 심판에 돈을 거는 이적 행위(?)를 하기도 했다.
결승점에 선 홍성흔의 출발 신호와 함께 두 주자는 질주를 시작했다. 스타트는 전일수 심판이 빨랐다. 하지만 중간 지점을 지나며 '젊은 피' 강민호의 뚝심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결국 결승선 20m를 남겨두고 전일수 심판이 경주를 포기하며 강민호에 승리가 돌아갔다. 조종규 심판은 통 크게 그 자리에서 강민호에 약속했던 3만 엔을 줬고, 강민호는 승리의 기쁨과 손에 쥔 3만 엔의 환희에 가모이케 구장 한 켠에서 무릎을 꿇고 포효했다.
강민호는 "정말 처음엔 지는 줄 알았다. (전일수 심판)스타트가 빨랐는데 뛰다 보니 속도가 처지는 것 같더라. 그래서 다리 힘이 아니라 허리 힘으로 다리를 끌어 올렸다"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러자 뒤에서 듣고 있던 양 감독은 "너 졌으면 곧바로 상동(2군 구장)행이었다. 이겼으니 2천 엔 내 놓아라"며 에이전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3만 엔을 손에 쥔 강민호는 주위에서 한 턱 쏘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슬며시 트레이너를 불러 3만 엔을 건네며 숙소에서 전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명분과 실속, 자존심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챙긴 강민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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