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파울플라이에 얽힌 기억 하나. 정확히 몇 년도의 일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상황은 또렷하다. 대구구장에서 열렸던 삼성과 현 두산의 전신인 OB와의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타자가 친 타구가 포수 머리 뒤쪽으로 높이 떠올랐다. 포수가 타구를 쫓아 성큼성큼 그물망 쪽으로 다가서며 미트를 갖다 댔지만, 파울타구는 미트 속을 튕기며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던 파울타구라고 생각한 공식기록원은 당연 포수실책으로 판단, 전광판을 통해 결과를 표출시켰는데..
잡을 수 있었던 공을 놓친 데 따른 미안함과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홈 플레이트 방향으로 돌아가던 포수. 전광판과 눈이 맞았나 싶더니 갑자기 2층에 자리한 기록실 쪽을 돌아보며 알 듯 모를 듯 한 제스처로 뭐라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 이닝이 끝난 뒤 그물망 앞으로 다가와 포수가 던진 질문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파울플라이 잡다 놓친 것도 실책으로 올라갑니까?”
기록판정에 있어 전혀 고민할 구석이 없었던 기록원으로선 순간 황당했을 터. 하지만 규칙과 이론보다는 기량연마에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바쳐야 하는 선수들의 현실에서 보자면 일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질문이었다.
야수가 파울플라이 타구를 놓친 경우에도 실책을 기록할 수 있는 근거는 규칙 10.13 (a)에서 찾을 수 있다. ‘야수가 파울플라이 볼을 떨어뜨려서 타자의 타격시간을 연장시켰을 경우, 타자의 출루여부에 관계없이 그 야수에게 실책을 기록한다’ 는 조항이 그것이다.
타자의 출루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파울플라이 포구 실책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야구기록적으로 파울플라이 실책의 영향력은 상당히 큰 편이다.
2007년 시즌 말미에 롯데 포수 강민호는 SK전에서 박경완의 초구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다 놓친 후, 박경완에게 곧바로 홈런을 허용한 예가 있다. 타자에게는 이러나 저러나 홈런이지만, 투수의 평균자책점(방어율) 측면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진다. 박경완의 홈런에 의한 득점은 홈런 이전에 터진 실책의 영향으로 비자책점으로 기록된다. 더욱 극단적인 예로 2사 만루에서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다 놓쳐 실책이 기록된 후, 바로 그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다면 투수의 실점은 4점이나 되지만 자책점은 0이 된다.
자책점 결정방식인 이닝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파울플라이 포구 실책은 삼진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실책 이후 일어나는 모든 타격행위의 결과는 없었던 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이 파울플라이 포구 실책은 또 하나의 기록적인 해석을 놓고 분쟁을(?) 야기시키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바로 퍼펙트게임에 얽힌 해석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퍼펙트게임은 투수가 안타나 4사구, 실책 등 그 어떤 이유로든 1루에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틀어 막아냈을 때에 투수에게 주어지는 기록이다. 출범 31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아직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꿈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파울플라이 타구를 잡다 놓쳐 야수에게 실책이 기록된 경우, 투수가 이 경기에서 단 한번도 타자의 1루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고 할 때, 이 투수의 퍼펙트게임 기록은 과연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항간에 떠도는 해석은 크게 상반된다. 단 1개의 실책도 없어야 퍼펙트게임이 가능하다는 쪽과 투수의 퍼펙트게임 기록에 있어 파울플라이 실책은 아무 영향력이 없기에 기록인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쪽의 주장으로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이전에 퍼펙트경기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정립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된다. 경기 자체로 무결점의 경기를 퍼펙트게임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파울플라이 실책은 퍼펙트게임을 가로막는 요소로 볼 수 있다. 퍼펙트게임과 연관된 이미지 중 하나인 전광판 상의 0으로 장식된 달걀꾸러미 행렬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기 자체가 아닌 투수의 기록으로만 재단한다면 파울플라이 포구 실수로 기록되는 실책 수는 퍼펙트게임 인정에 있어 전혀 제약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투구 수를 늘리는 정도의 영향력만 갖고 있는 단순한 야수의 실책 수일 뿐이다. 타자주자의 출루를 원천 봉쇄해야 주어지는 퍼펙트게임의 기록 정의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퍼펙트게임의 기록적 정의를 바닥에 깔고 따질 때 파울플라이 야수실책은 몇 개가 나오든 투수의 퍼펙트게임 성립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공식기록원들이 파울플라이 타구에 대해 실책을 기록하는 판단기준은 어디에 두고 있을까? 파울지역에 뜬 플라이 타구를 잡다 놓치는 것은 일반적인 내야수의 플라이 타구 포구실책 판정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포수 뒤로 뜨는 파울플라이 타구는 공의 궤적이 정상적인 플라이와 다르기 때문이다. 낙구지점 판단이 보는 것처럼 용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개 낙구지점에서 기다리는 형태가 아닌, 전력으로 타구를 쫓는 이동형태에서 잡다가 놓치는 것은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포수가 아닌 1루수나 3루수의 파울플라이 실책은 포수보다 실책기록 강도가 좀더 높지만, 1.3루 파울지역의 불펜 시설 등을 의식해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감안한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 아직 외야수가 파울플라이를 놓쳐 실책이 기록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는데, 이는 정상적인 위치에서 파울지역까지 달려오는 거리가 상당히 먼 관계로 수월한 플레이로 간주하지 않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 물론 외야수가 처음부터 파울선상 부근에 위치하다 자리를 조금 옮긴 정도에서 파울플라이를 놓쳤다면 실책이 기록될 수 있다.
참고로 역대 통산 실책 최다부문 랭킹에서 포수로서 가장 높은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포수는 넥센에서 은퇴한 김동수로 통산 실책 수는 107개이며, SK의 박경완은 106개로 김동수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KBO 기록위원장
SK 포수 박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