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댄싱퀸'(이석훈 감독)에서 악역일 듯 보였던 그는 예상 외 였다. 민진당의 실세인 국회의원 종찬으로 대학 동기 정민(황정민)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그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닳고 닳은 인물이 아니었다. 진짜 우리 지도자 옆에도 저런 인물이 한 명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한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을 연기한 배우 정성화다.
지난 1월 18일 개봉한 '댄싱퀸'은 강한 뒷심으로 400만 관객 돌파를 향해 질주 중이다. 그 역시 영화 흥행에 잔뜩 기분 좋은 상태였다. "너무 좋았던 것은 오후 3시쯤 갔는데 좌석이 다 매진됐다는 거에요. 다음 프로도 꽉 찼고요. 정말 뿌듯하고 보람있었어요."
'아이 러브 유', '영웅', '맨 오브 라만차' 등 주옥같은 작품들로 뮤지컬 분야에서는 이미 스타의 자리에 우뚝 선 그는 하지만 영화 분야에서는 "아직 신인티를 안벗었다"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주로 영화는 알음알음 연락이 오거나 정말 괜찮은 작품이면 매니저가 찾아가서 기분 좋게 얘기하고 안되면 기분 좋게 안되고 그럴습니다. 하하."
그가 당초 '댄싱퀸'에서 들어온 배역은 황정민의 동생 역이었다. "그 역도 정말 재미있고 좋잖아요. 그런데 대본을 읽어보니 종찬 역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또 황정민 씨의 동생하기엔 제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것 같고. 하하. 그렇게 역할이 바뀌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것 같아요."
또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원래 종찬은 극중 악역이었다. 하지만 캐릭터가 나쁜 쪽으로 가면 너무 영화에 뭐가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는 그의 의견대로 종찬은 따뜻하게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정치인 티를 안 내는 정치인으로 탈바꿈됐다.
영화 흥행에 가족들이 좋아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사돈의 팔촌까지 다 보셨다고 해요"라며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제가 보통 뮤지컬을 하니 뮤지컬 행사 자리는 많아도 영화는 별로 없었잖아요. 그랬더니 더 신기해하고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성화가 이런 연기도 어울리는구나"란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하기도 한다고.

"개그맨 출신이라 그런지 코미디 연기가 유난히 자연스럽다"라고 말하자 "개그맨 출신이라 전부 코미디 연기를 잘 하는건 아니라고 본다"라며 "영화에서 튀지 않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런 연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촉이 좋아서 그런 것을 정복하는 데 오랜 시간은 안 결렸어요"라고 덧붙였다.
"개그맨 출신 배우 중 가장 탄탄한 성공울 거둔 것 같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묻자 살짝 미소 짓더니 "네"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개그맨이 됐지만 드라마 '카이스트'를 하고 관심이 아예 전향이 돼서 연기자가 꿈이 돼 버렸어요. 물론 개그맨도 짜여진 극 속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지만, 그렇게 웃기는 것 보다 (연기를 통해) 이렇게 웃기는 게 나한테는 더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 안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희로애락을 연기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컸어요."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현재는 개그맨이란 꼬리표가 무색할 정도로 배우로서 더 유명하다. 서울예대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개그맨이 된 정성화는 '럭키'한 인생을 살아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개그맨 시험도 단 번에 붙고 연기 오디션에서도 떨어져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스스로도 돌아보면 신기하다고.

'댄싱퀸'에 대해 돌아가서, 호흡을 맞춘 황정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왜 잠수부가 물 속에 들어가서 자기 산소통을 주는 것처럼 도움을 받은 것 같다"라며 "영화 중간 중간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이건 오버야, 이렇게 설정하는 게 어떨까, 지금 좋아라고 구체적인 지적도 해 주시고, 화면 속에 뒷 모습만 나오는데도 얼굴 표정은 그대로 연기하고 있으시더라. 그런 면이 정말 놀랐다"라고 전했다.
여주인공 엄정화와는 나름 깊은 인연이 있다. 예전 SBS 예능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에서 세미 드라마 야외 꼭지를 찍을 때 난생 처음 주인공을 맡아 연기했었고, 그 때 상대역이 엄정화였던 것.
"엄정화 누나와는 깊은 인연이에요. 군대에 있을 때 고참이 '너 연예인 누구 알아?'이러면 조그맣게 '엄정화 압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럼 '전화해봐!' 이러고. 안절부절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그렇게 전화를 하면 다 잘 받아 주더라고요. 자주 만나거나 이러진 못했어도 마음 속에서 친한게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회식 자리는 여배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정말 좌우되는데 그런 면에서 정화 누나는 최고입니다."
올해 계획을 묻자 '뮤지컬' 라인업이 계속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2, 3, 4월은 쉬면서 집에서 여유도 부리고 마음가는 대로 여행도 떠날 예정이라고. 그 이후에는 뮤지컬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이다.
그런가하면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500만불의 사나이'에서는 서글서글한 악역으로 카메오 출연한다. 제작사 하리마오 대표와의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다.
정성화에게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넘쳐있었다. "즐겁고 재미있고 앞으로 할일이 많 을 거 같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릴러도 해 보고 싶고, 블랙 코미디도 해 보고 싶어요. 몸을 불살라 보고도 싶고요. 그런 기회가 많아진 게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영화에서도 잘 하면 뮤지컬과 같은 입지를 굳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하하. 이제 공부를 해야지요. 사실 아직 영화는 잘 몰라요."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장점을 '의외성'이라고 밝혔다. 생각해보면 전작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블링블링한 여자 옷을 모으고 입는 변태 만화광을 연기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조승우 씨와 같이 뮤지컬에 더블캐스팅 돼서 부담감을 이기는 것도, 영웅도 안중근 의사도 저 만의 '의외성'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도 저의 또 다른 의외의 모습을 앞으로도 많이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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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