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남이 된 이왕기의 소박한 목표는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2.02.25 12: 36

데뷔 첫해부터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마운드를 호령하며 깜짝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차세대 수호신'이라는 그럴싸한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데뷔 첫해 기록은 프로 통산 최고 성적이었다. 이후 원인모를 부진의 늪에 빠졌고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풋풋한 소년에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그는 올 시즌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주인공은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왕기(26).
부산고를 졸업한 뒤 2005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그는 51차례 마운드에 올라 5승 3패 3세이브 6홀드(평균자책점 4.02)를 거뒀다. 이왕기의 등장은 롯데의 암흑기에 한 줄기 빛이었다. 2006년 승리없이 2패 3세이브 2홀드(평균자책점 3.48), 2007년 1패(평균자책점 5.91)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뒤 입대를 결심했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10년 6월에 복귀한 뒤 전훈 캠프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잔류군 선수들과 함께 김해 상동구장에서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다. "날씨가 조금 춥지만 운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왕기의 환한 미소는 여전했다.

복귀 후 전훈 캠프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물음에 "작년에는 몸을 덜 만들어 명단에서 제외됐다. 일본 가고시마 2차 캠프에 지각 합류하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다. 작년에 한 게 없으니까 이번에는 마음을 비웠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고 긍정의 힘을 믿었다. 이어 그는 "캠프가 간다고 잘 하고 못 간다고 못 하는건 아니다. 노력하기 나름"이라고 개의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18일 품절남 대열에 합류한 이왕기는 아내(박소정 씨) 자랑을 늘어 놓았다. "결혼한 뒤 아내가 있으니까 집으로 곧장 가게 되더라. 아내가 소소한 부분까지 아주 잘 챙겨준다. 마음이 안정된다는 표현이 딱이다".
2005년 데뷔 첫해 가능성을 선보인 뒤 이후 한 걸음씩 물러났던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처음 입단했을때 학창 시절에 잘했던 자신감 하나만 믿고 던졌다. 하지만 이듬해 더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다. 당시 마무리 투수가 없었기에 더욱 욕심을 부렸다. 그런데 고비가 왔을때 마음을 추스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이왕기는 부산 사나이답게 정면 승부를 다짐했다. "그동안 마운드 위에서 타자와 싸워야 하는데 자신과 싸우는데 급급했다. 여유를 되찾고 싶다". 그리고 예년보다 팔 각도를 낮추며 공끝의 위력이 배가 됐다.
이왕기는 '안방마님' 강민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형이다". 이왕기는 강민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언젠가 민호형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는 처음에 와서 너무 단맛만 경험했다. 쓴맛을 봐야 더 클 수 있다'고 하더라. 이제 다시 단맛을 보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사실 민호형은 대표팀 주전 포수로 성장하며 나와 격차가 엄청나다. 그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챙겨주는게 늘 고맙다. 예전에는 친구같은 형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삼촌같이 느껴진다".
이왕기의 올 시즌 목표는 소박하다. 타이틀 획득 또는 두 자릿수 승리는 그에겐 사치에 가깝다. "사직구장 마운드를 밟지 못한게 어느덧 4년이 됐다. 올해 가기 전에 한 번 밟고 싶다. 패전 처리가 되더라도 꼭 오르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보란듯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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