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이동국(33, 전북)은 정확히 10년 전이었던 2002년의 황선홍(당시 34세) 포항 스틸러스 감독과 여러 모로 공통점이 많다. 2002월드컵 4강 진출로 명예 회복에 성공했지만 돌이켜보면 황선홍의 축구 인생 역시 굴곡졌다. 1994 월드컵에서 실망스런 플레이로 원흉이 되다시피 했고 절치부심하며 기다렸던 1998월드컵에선 본선 직전 부상으로 낙마한 경험이 있다.
축구 인생의 굴곡이라면 이동국 역시 만만찮다. 2002년에는 히딩크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시련을 겪었던 그는 2006년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또 월드컵을 지나쳐버렸다. 2010년 남아공에서 기회를 잡았건만 우루과이와 16강전 회심의 슈팅이 벗어나며 탈락의 원흉이 되다시피 했다.
이동국은 2010월드컵 이후 조광래 체제에서 또 철저히 외면받았다. K리그에서 펄펄 날며 지난해 10월 폴란드와 평가전 및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오랜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다시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후 이동국은 마치 조광래 감독을 겨냥한 듯 “차라리 소속팀에 전념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나름 폭탄 발언을 던졌고, 그것으로 이동국의 대표팀 경력은 끝난 거라 생각됐다.
하지만 전북 현대에서 함께 하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쥐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동국은 다시 부름을 받았고 보란듯 지난 25일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치른 최강희호 첫 경기에서 2골을 터트리며 자신의 능력과 진가를 증명했다.
2골 모두 이동국 개인의 능력이 빛난 골이었다.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페인트 동작(선제골)이나 반대편 포스트를 보고 정확한 지점으로 꽂아넣었던 것(추가골) 모두 K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라는 이동국의 침착성과 킬러 본능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골보다 그 보다 더 주목된 부분은 후반 13분 교체돼 나갈 때까지 이근호, 한상운 등 어린 공격수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터주는 ‘찬스 메이킹’ 역할까지 잘 훌륭히 수행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동국으로선 이번이 월드컵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올해 33살이고 브라질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에는 35살이 된다. 축구 선수로서는 황혼의 나이다. 그 때까지 골을 펑펑 터트려 준다면 좋겠지만 반드시 골이 아니더라도 찬스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개척해주는 능력 등은 어린 선수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팀에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런 점에서 2002년의 황선홍은 이동국에게 하나의 이상적인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비록 월드컵 무대에선 1골 밖에 넣지 못했지만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1골 이상의 무수한 찬스가 황선홍의 발끝에서 만들어지며 ‘특급 도우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나간다면 이동국이 2002년 당시의 황선홍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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