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름내 땀 흘려 일한 개미는 안락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바이올린을 켜며 풍류를 즐긴 베짱이는 거지꼴이 돼 개미네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신세가 됐다는 이야기다. ‘개미와 베짱이’가 주는 교훈은 명백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생겼다. 여기, 베짱이의 탈을 쓴 졸탄(한현민, 이재형, 정진욱)이 있기 때문이다.
유쾌한 세 남자는 지난해 9월 tvN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 첫 시즌부터 함께 하고 있다. “개그가 즐겁다”고 말하는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놀듯이 일을 하고 일하듯이 놀면서 오는 3월 3일 시작하는 ‘코빅’ 챔피언스 리그에 합류, 원년 멤버의 자존심을 지켰다.
“정규리그가 마무리 되는 상황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초반 ‘코빅’은 객석이 안차서 스태프들을 데려다 앉혀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지금은 아니에요.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해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개그붐에 일조했다는 자부심도 있죠.”(이재형)

사실 시즌1에서 ‘졸탄 극장’으로 최종 순위 4위를 기록했던 졸탄, 이번 시즌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악마의 편집’으로 꼴찌 팀이 당하는 밀가루 폭탄 굴욕을 맛보는 등 아픔도 있었다.
“사실 시즌2를 위해 가지고 있던 총알은 ‘악마의 편집’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악마의 편집’이 가진 문제가 시즌 시작하고 나서야 드러난 거죠. 후반, 그러니까 악마의 편집이 가해지기 전까지 웃음이 나올 요소가 없다는 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부분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롱런했을 텐데 해답을 못 찾았습니다. 저희끼리 자평할 때 ‘첫 단추를 애매하게 끼웠다.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던 시즌이다’, 이렇게 봅니다.”

한현민 이재형 정진욱은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더니 정규리그를 “쉬어가는 기간”이라고 정리하고 챔피언스 리그는 “날아오를 시간”으로 순식간에 정의내렸다. 비상을 위한 준비, 졸탄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 ‘상상극장’ 콘셉트를 챔피언스리그까지 가져갈 생각입니다. 단, 객원멤버 두 명이 투입될 예정이고요. 아직 비밀인데 두 사람 모두 졸탄과 개그 코드가 맞아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색깔의 코미디를 선보일 계획이에요.”(이재형)
“졸탄은 어려운 개그를 한다는 말을 깨고 싶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개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연극적인 요소들을 선호하다보니 그런 이미지가 생겼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캐릭터를 강하게 잡아 가려고 합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라이또(이용진, 박규선, 양세형)일까요? 이재형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고 저는 반복적으로 하는 동작, 정진욱은 반복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는 정도로 알아주세요.”(한현민)
호흡을 맞춘 지 벌써 8년이 훌쩍 넘었다. “다른 개그맨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건 팀워크”라고 장담하는 졸탄은 컬투(정찬우, 김태균)를 롤모델로 꼽았다.
“컬투하면 사람들이 다 알듯이 졸탄하면 사람이 다 알고, 컬투하면 공연이 다 매진되듯이 졸탄하면 공연이 다 매진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초창기 컬투 패밀리였으니까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죠. 어떻게 보면 컬투 형님들을 뛰어넘겠다는 말이 존경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팀 브랜드를 오래 갖고 지켜온 점도 존경스럽지만 정이 많은 형들이에요. 지금은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공연 끝나면 술 한 잔씩 먹고 외롭다고 부르면 가서 또 한 잔 하고 그랬어요. 단점이라면 컬투 형님들이 앨범을 내면서 좀 많이 말아먹었잖아요? 그 점은 닮고 싶지 않아요.(웃음)”
‘코빅’을 기점으로 졸탄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에 올리는 하나의 코너에는 약 6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개그맨들은 그 6분을 위해 일주일 동안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확정된 아이디어를 뒤엎고 다시 회의를 시작하는 스케줄을 반복한다. 일주일도 짧다고 한숨부터 내쉬는 개그맨들이 대부분인데 졸탄은 종합편성채널 MBN ‘개그공화국’에 출연하며 자그마치 2개의 개그 프로그램에 동시에 등장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요. 연기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건 다하겠다는 생각이죠. SBS에서 하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져 설 무대가 없을 때 저희끼리 매우 부지런하게 이것저것 많이 했었어요. 안 믿기시죠? 뮤지컬 대본도 썼고 해외 진출을 목표로 논버벌 코미디도 구상해 놓은 상태입니다. 사실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한 ‘프리즌’도 저희가 썼던 거예요. 졸탄이 헛점이 많아 보이겠지만 정말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공연이 없을 때도 보여주고 싶은 무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만한 코너를 구상하느라 셋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까요.”(한현민)
욕심쟁이 졸탄의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연기가 하고 싶다거나 더 좋은 개그를 선보이겠다는 추상적인 그림이 아니다. “직접 카메라를 사고 대본을 쓰면서 우리끼리 정말 재미있어 한다”는 이재형, 한현민, 정진욱은 조만간 인터넷을 통해 ‘졸탄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조금씩 구색을 맞춰가고 있는 ‘졸탄쇼’에는 지상파이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콘텐츠를 모아 네티즌들과 공유하겠다는 졸탄의 바람이 담겨있다.

다시 한 번 졸탄이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코빅’이라는 발판이 있었다. 세 사람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 ‘코빅’은 번데기다! 지금 졸탄은 ‘코빅’이라는 번데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죠. 겉으로 보기엔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기관과 조직을 성충의 구조로 바꾸면서 부단히 변화하고 있잖아요? 졸탄이라는 애벌레가 ‘코빅’ 안에서 성장해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한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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