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싶으면 일어나자.”
지난해 9월 시작된 tvN ‘코미디 빅리그’ 시즌1에서 총 10명의 송 실장이 탄생했다. 선발 기준이라든지 자격 조건은 없었다. 그냥 느낌이었다. ‘나다 싶으면 일어나’ 잽싸게 무대 위로 돌진해야 하는 송 실장의 은밀한 미션은 ‘코미디 빅리그’의 다크호스 아3인의 무대에서 만들어졌다. 시즌1 ‘관객 모욕’으로 송 실장에게 굴욕을 안긴 아3인은 시즌2에 ‘JSA'로 돌아왔다. 우락부락한 얼굴로 휴전선을 지키는 아르미(ARMY) 김기욱과 남북한 군인으로 분한 이상준, 예재형은 서로 자국의 핵폭탄(관객 중 가장 외모가 위협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과 송 이병의 위력을 과시하며 무대를 꾸려나갔다.
“시즌2를 시작하면서 아이디어 회의를 많이 했어요.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3인은 관객들과 함께 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거든요. ‘코빅’ 김석현 감독도 시즌1이 끝났을 때 ‘좀 더 연구하면 재밌는 게 있을 거야’라고 조언해주셨고요. 보시다시피 저는 북한 사람처럼 생겼고 김기욱은 외국인 느낌이고, (예)재형이 형은 그냥 사람 같잖아요.(웃음)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배분됐죠. 이걸 토대로 아이디어를 다듬어 나온 게 ‘JSA’에요.”(이상준)

야심차게 준비한 ‘JSA’였지만 지난 1월 중순 김기욱이 음주 운전으로 갑작스럽게 코너에서 하차하면서 아3인은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김기욱에 대한 객석의 반응이 생각보다 컸어요. 재형이 형하고 제가 힘에 부친다고 생각될 때 김기욱이 한 마디 거들어 주면 환호가 터졌거든요. 기욱이의 하차가 ‘JSA’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냐 하면은요, 함께 할 때는 1~3등이었고 우승을 내다봤지만 빠지고 나서는 5~6등을 했어요. 김기욱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시즌1 때 했던 관객모욕이 저 혼자 끌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김기욱이 빠진 후 시즌1의 포맷이 ‘JSA’에 계속 나오는 것 같아 아쉬워요.”(이상준)
일면식도 없는 관객과 호흡을 맞춘다는 건, 학창시절 1분단 앞줄부터 질문을 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 기습질문을 할 때처럼 위협적인 이벤트다. 관객 2명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아3인의 모든 대사는 애드리브가 된다. “짜고 하는 개그는 하기 싫고 짤 생각도 없다”고 단언할 만큼 돌발 상황에 자신이 있는 두 사람이지만 물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되겠다 했는데 터지지 않았던 아찔한 개그가 있었죠. 일부러 관객한테 야유를 받으려고 ‘이 여자 뭐야, 왜 이렇게 뚱뚱해. 살 좀 빼지, 꽃돼지’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린 그림은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면 제가 ‘나한테 왜 그러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지’ 자로 끝나는 라임 개그를 짜고 나서 혼자 한 3일을 웃었거든요. 그런데 안 통했어요. ‘아니다’ 싶을 때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제가 고집이 있어서 그 날 녹화 내내 계속 했어요. 반응이 너무 안 좋으니까 갑자기 식은땀이 나더라고요.(웃음)”(이상준)

아3인의 팀명에는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하고 인지도 좀 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코빅’ 시즌1이 시작될 때 아3인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냉랭한 관객과 마주해야했다. 하지만 최종 순위 3위로 ‘코빅’ 을 마무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팀 이름도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하고 인지도 좀 ‘더’ 주세요’라는 뜻으로 수정됐다. 이제 ‘코빅’에 아3인이 나오면 관객들은 웃을 준비를 한다. 관객들은 아3인이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잘하는 아3인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가족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졌다.
“ ‘코빅’이 잘되니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이제는 ‘왜 1등을 못하냐’, ‘저 상금을 못 타오냐’, ‘왜 쟤네한테 지냐’는 말씀을 하세요.(웃음)”(이상준)
서울예술대학 동문으로 만난 이상준과 예재형은 10년 째 동고동락하면서 개그 무대에 오르고 있다. SBS를 통해 방영됐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이건 아니잖아’ 깨방정 콤비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코빅’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개그맨들에게 으레 기대하게 되는 넉살이나 너스레를 찾아볼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 음주가무를 즐기기보다는 거한 야식으로 여가 시간을 채운다.
“상준이도 그렇고 저도 술 못 마시고 안 마셔요. 그렇게 안 생겼죠?(웃음) 사실 술이라는 게, 사람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많이 마시잖아요. 막상 술 마시고 나도 별로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맛도 없고요. 담배도 안 해서 만나서 밥 먹고 아이디어 하고 주로 얘기를 하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상준이하고 우리 오늘 아주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자면서 소주 한 병을 시킨 적이 있는데 둘이서 소주 딱 한 잔씩 하고 어지러워서 나왔어요. 저는 못 볼꼴까지 봤어요.(웃음)”(예재형)

아3인은 독특했다. 떠들썩한 웃음과 수다가 아니라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상준이 말할 때는 예재형이, 예재형이 말할 때는 이상준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부연 설명을 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빙빙 돌려 말하지도 않았고 가슴 찌릿한 독설을 하지 않았다. 은근하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두 사람, 이상준과 예재형은 개그맨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자신들의 개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개그 시장이 불황이라고 해도 결국 웃긴 사람은 방송에 나오게 되어 있어요. 개그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건 다른 이유가 없죠. 이런 저런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냥 재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웃찾사’가 없어서 내가 못 웃기고 있다? 아니오, 내가 못 웃겨서 ‘웃찾사’가 없어진 겁니다.”(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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