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그가 23년 만의 등번호 11번 잠수함 에이스로 순항하길 바랐다. 사이드스로로도 150km을 훌쩍 넘는 광속구와 춤추듯 떨어지는 포크볼. 그러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팀의 바람은 어이없이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MBC 시절 故 이길환 이후 LG 트윈스의 잠수함 에이스로 떠오르던 박현준(26)의 야구 인생에 붉은 정지 신호가 커졌다.
KBO는 지난 5일 경기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LG 박현준에게 야구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여기에 6일 LG는 박현준과 김성현을 구단에서 공식 퇴출했다. 이로써 박현준은 훈련과 경기를 비롯한 일체의 구단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며 참가활동보수도 받을 수 없다. 그야말로 모든 야구 활동이 정지됐다. 국내 프로야구와 별다른 협약을 맺지 않고 세미프로리그를 운영 중인 이탈리아 등에서 선수로 뛸 수는 있으나 병역 미필 신세인 박현준인 만큼 사실상 선수 생활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다.
2010시즌 중 SK에서 이적해 온 박현준은 지난해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하며 LG 팬들의 위안거리가 되었다. 좌완 에이스 봉중근이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된 가운데서도 LG가 시즌 초 순항했던 데는 박현준의 놀라운 활약상이 자리했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조작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LG의 현재이자 미래'에서 돌아올 수 없는 에이스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전신 MBC 청룡팬들의 향수도 불러 일으킬 만한 에이스의 풍미를 지녔던 박현준이었던 만큼 그 아쉬움은 짙어지고 있다. MBC 시절 청룡 마운드의 에이스 중 한 명은 자그마한 체구의 잠수함 투수였던 故 이길환이었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11번을 달고 마운드에 올랐던 이길환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의 개막전 선발 투수였던 동시에 1983년 15승, 1988년 10승을 거두는 등 실력파 에이스로 활약헀다.
물론 고인과 박현준의 공통점은 11번, 잠수함 투수라는 점 정도 밖에 없다. 체구가 작은 편이던 고인과 달리 박현준은 185cm 90kg의 당당한 체격에 광속구를 뿌릴 수 있는 잠재력을 현실화한 투수다. 프로야구 전체로 보면 삼성 시절 임창용(야쿠르트) 이후 보게 된 광속 사이드암 선발인 만큼 박현준에 대한 주목도는 굉장히 높았다.
특히 확실한 국내 투수의 존재가 시급했던 LG 입장에서 박현준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그러나 지난해 넥센에서 가세한 김성현과 함께 LG는 졸지에 두 명의 미래 에이스를 잃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선수들에게 두 자리 기회가 더 가는 셈이지만 어느 정도 실적을 쌓았던 유망주들의 야구 활동 정지 및 퇴출은 팀은 물론 리그에도 커다란 타격이다.
선수로서 해서는 안 될 과오를 저지른 만큼 박현준에게 돌아온 죄의 값은 굉장히 컸다. 그만큼 조작 참여에 대한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만 선수 본인이다. 그리고 팀과 팬들은 오랜만에 보는 잠수함 에이스의 야구인생 정지와 팀 퇴출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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