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덤이 없는 주자의 도루기록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03.15 07: 36

‘한 방에 둘.’
통상 희생플라이라 하면 외야 플라이타구를 이용해 3루주자를 득점시켰을 경우, 타자에게 주어지는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희생플라이 아웃 한 방에 2타점을 거둬들이는 상황도 보게 된다.
2010년 메이저리그 애틀랜타와 플로리다의 경기에서는 4-6으로 뒤지던 애틀랜타가 1사 만루 상황에서 중견수 쪽 대형 외야플라이 타구로 2루주자까지 홈으로 불러들이며 경기를 6-6 동점으로 만든 일이 있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는 흥분된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two run sacrifice fly”
국내프로야구에도 2타점 짜리 희생플라이의 짜릿한 덤을 챙긴 타자 리스트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영우(한화,1998), 조동찬(삼성,2005), 최희섭(KIA, 2007)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로 가능한 이유는 수비측의 기록되지 않는 안이한 수비대처가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지만, 어찌되었든 타자로서는 뜻하지 않았던 타점 하나를 덤으로 얻어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을 터. 한편 수비수가 타구 한 방에 주자를 2명 이상 한꺼번에 잡아내는 일도 있는데 우리는 이를 기록용어로 병살 또는 삼중살이라 부르고 있다. 2007년 6월 13일 2루수 손지환(KIA)이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삼성 박진만의 직선타구를 잡아 주자 둘까지 묶어 아웃시켰던 단독 삼중살은 가장 대표적인 덤 수비기록.
하지만 주자에게는 도루기록상 한 방에 둘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원천봉쇄 되어 있다. 가령 도루를 시도한 1루주자가 2루를 돌아 3루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하더라도 주자에게 주어지는 도루기록은 달랑 하나뿐, 그 이상의 추가적인 도루기록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도루 하나 외의 추가 진루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른 이유를 찾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얼마 전 사회인 야구경기에서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2루로 뛴 주자가 투수와 포수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틈을 이용,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처 달려 살았는데, 이를 도루 2개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도루 1개로 봐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따라왔다.
한편 이를 두고 루상에 나간 주자가 한달음에 도루 2개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기록에 조회가 깊은 야구팬들 사이에는 작은 논쟁이 일기도 했는데.... 이 문제는 기록강습회 참가자들로부터 가끔 받는 질문들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간 딱 부러지게 이렇다 할 답변을 내리기 힘든 내용이라 생각만 무성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대략적이나마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한다.
첫째, 상식 선에서 야구적으로의 접근방법이다. 도루를 노려 뛰기 시작한 1루주자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수비측의 견제나 제지를 뚫고 3루까지 달려가 산다는 것은 아무리 발이 빠른 주자라 해도 야구 구조학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수비측의 방심과 태만한 대응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자가 뛰는데도 장시간 전혀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 수비측에 책임을 묻는 것이 좀더 합리적이다. 스타트를 끊은 1루주자의 2루 진루는 당연히 도루가 되겠지만 연이은 2루에서의 3루 진루는 그 시점에서 공을 가지고 있는 야수의 무신경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야수실책 적용을 신중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둘째, 도루기록을 얻고자 하는 주자가 가지고 있는 의도의 본질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자가 원래 목표로 했던 루는 바로 다음 루, 즉 1개 루였다. 주자가 도루를 시도할 때 다음 루 이상의 루를 목표로 두고 뛰지는 않는다. 다만 목표로 했던 루에 닿고 보니 상황이 바뀌어 또 다른 목표가 새롭게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황이 변하자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플레이를 이어간다는 것, 이를 야구적으로는 넥스트(next) 플레이라 부르고 있다.
야구 규칙적으로 넥스트 플레이 상황은 새로운 규칙 적용의 시작이자 경계선 노릇을 한다. 도루를 시도한 주자를 잡기 위해 포수가 바로 해당 루에 송구하다 악송구를 하는 것은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고 주자의 도루를 인정하지만, 주자가 루간에 걸린 것을 확인한 후 포수가 곧바로 송구하지 않고 한 타이밍을 죽여 송구하다 악송구를 저질렀다면 포수에게 책임을 묻고 주자에게는 도루자를 기록하고 있다. 포수의 주자상황 확인 후 벌인 플레이를 확인 전 플레이와 엄연히 다른 플레이로 구분 짓기 때문이다.
셋째는, 규칙적 근거를 찾아보는 일이다. 미국의 야구규칙 변천사를 살펴보면 1888년 도루와 관련된 내용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if the base runner advances another base he shall not be credited with a stolen base..’
(도루를 시도한 주자에게 도루를 부여하고, 도루 시도 과정의 실책은 해당 야수의 실책으로 기록한다. 주자가 더 많은 루로 진루한 경우 그 주자에게 도루를 부여해서는 안되며...)
이를 부연 설명하면 다음 루를 훔치는 것은 도루로 간주하지만, 연장선상에서 그 이상의 루를 진루한 것은 도루로 기록하지 말 것을 명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도루기록의 제한성을 달아놓은 배경은 앞서 말한 플레이에 있어서의 상식적이고도 일반적인 범주와 기준을 근거로 주자의 도루기록을 재단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 발견된 도루규칙 틀 안에서의 주자의 도루기록에 관한 ‘원 플러스 원(1+1)’이라는 덤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이대형의 도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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