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火車, 변영주 감독)는 김민희란 여배우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일 개봉한 '화차'는 이날 하루동안 전국 453개 스크린에서 7만389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러브픽션'을 누르고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누적관객수는 7만8465명.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 '화차'를 원착으로 한 영화 '화차'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나선 한 남자와 전직 형사, 그리고 그녀의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걸 알게된 후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을 다룬 영화로 제목은 '죄를 지은 자가 한 번 올라타면 내릴 수 없는 잔혹한 불수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은 지난 1992년 출간돼 '타인의 인생을 훔친다'는 설정을 모티프로, 신용불량과 개인파산의 심각성을 일깨우며 당시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영화는 IMF 이후 한국사회의 배경에 맞춰 한 여인이 자신의 삶을 지우고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잔혹한 일들을 펼쳐지는지 그려냈다.
영화에서 잔혹한 수레에 몸을 싣는 인물은 김민희다. 영화는 러닝타임 끝까지 여주인공 선영과 그를 연기한 김민희란 배우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김민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 변영주 감독의 김민희에 대한 "카메라 앞에 서서 멍하게 있더라도 뭔가 중요한 감정이 잡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배우"라고 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김민희는 '패셔니스타'라 불리는 스타일에 묻혀 연기력이 저평가된 경향도 없지 않다. 노희경 작가의 2006년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서부터 연기력이 빛을 발한 김민희는 이후 드라마 '연애결혼',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여배우들', '모비딕'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 얼굴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간 작품들이 김민희의 배우보다는 스타일리시한 아이콘으로서 주목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의 개성이 굉장히 강한 스타일이라 작품에서 100% 그것을 백지화 시키는 것이 어려울 법 하다. 김민희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어느 순간 확 커진 케이스라 그 열정을 쏟아부을 작품을 만나기를 고대해 온 것처럼 이번 영화 '화차'는 김민희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이나 편견들을 지운다. 항상 스타일로 주목받는 프랑스 여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를 영화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만난 느낌과 비슷하다.
모노톤에 가까운 색깔 없는 얼굴에 약간은 멍한 눈동자로 사람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보통 영화에서 최고로 꼽히는 팬션 장면이나 용산역 장면도 주목할 만 하지만, 영화 내내 불안 공포 사랑 분노 등 섬세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눈빛이 흡인력있다.
영화에서 발견한 김민희의 장점 중 하나는 쉽게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눈빛과 표정은 한없이 순수한 고등학생 같다가도 한순간에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겪은 여성의 모습이 겹쳐진다. 적어도 올 상반기 가장 눈에 띄는 여배우는 김민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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