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는 서로 알고 하는 것이다. 누가 더 죽기살기로 하느냐에 갈린다".
부산 KT 전창진 감독은 지난 8일 인천 전자랜드와 6강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초반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작하자마자 긴장해서 아무 것도 못하더라. 어깨 무거운 것이 보였다. 그때부터 화가 났다"는 게 전 감독의 회고. 그는 "깜짝 놀랄 정도로 근성이 부족했다. 나는 근성없이 설렁설렁 뛰는 건 못 본다. 기술자나 그렇게 하는 것이지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1차전 패배 후 화가 난 나머지 한숨도 못잔 전 감독은 그러나 선수들에게 따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2차전이 열린 10일 오전 미팅에서야 선수들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다. 박상오는 "감독님께서 이겨낼 때까지 우리를 혼낼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를 달래려면 달랠 수 있지만 지금은 달랠 시기가 아니다. 너희가 이겨낼 수 있도록 이겨낼 때까지 혼낼 것이다. 이겨내라"고 주문했다.

2차전에서 KT 선수들은 본래 끈끈함을 되찾았다. 수비에서 한 걸음씩 더 움직이고, 팔을 뻗어가며 전자랜드 선수들을 괴롭혔다. 1차전에서 34점을 폭발시킨 문태종을 11점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3쿼터에 역전을 당하며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4쿼터에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재역전했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끈끈한 승부근성을 보인 결과였다.
경기 후 전창진 감독은 "선수들이 근성을 발휘했다. 경기를 이겨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덤비려 하는 의지를 보였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정규리그에서도 터프한 플레이를 펼치는 전자랜드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 종반 어렵게 끌려다녔던 KT였지만 이날 만큼은 달랐다. 전 감독은 "전자랜드한테 계속 그런 식으로 아깝게 졌다. 또 그런 상황이 됐지만 조마조마 하지는 않았다"고 자신했다.
전자랜드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조성민은 "상대가 터프하게 신경전을 하려고 한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지 않고 기싸움했다"고 말했다. 임효성·이현호 등 선배 선수들과 신경전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대응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팀의 에이스답게 전혀 눌리지 않았다.
조성민은 "상대팀에서 터프하게 나오는 것에는 개의치 않겠다. 앞으로도 전투적으로 패기있게 경기에 임하겠다. 전력상으로 우리가 전자랜드에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남은 경기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외국인선수 찰스 로드도 2쿼터 막판 일찌감치 3파울에 걸렸지만, 4쿼터 마지막까지 추가 파울 하나로 끝까지 코트를 지켰다. 공격 리바운드만 10개나 잡아내며 놀라운 승부근성을 보였다. 전 감독도 로드에게 직접 하이파이브를 먼저 건넬 정도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전 감독은 "지난 2년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이기고 내리 3연패로 무너졌다.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 이제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반대로 1패를 먼저 당한 뒤 반격의 1승을 가했다. "이길 때까지 혼낸다"는 전 감독의 리더십으로 깨어난 KT의 승부근성. 남은 6강 플레이오프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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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