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봄날 찾아 온 '러브레터'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도 싱숭생숭하다. 따뜻한 봄 햇살과 흩날리던 벚꽃이 아름다웠던 그 때 그 시절, '나는 누구를 사랑했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엄태웅, 한가인, 수지, 이제훈 주연 영화 '건축학개론'(이용주 감독)이 13일 오후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갖고 베일을 벗었다.

공개된 '건축학개론'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기막힌 반전도, 배우의 온 몸바친 열연을 자랑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도, 배우도 그냥 천천히, 잔잔히, 따뜻하게 '영화는 감성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파수꾼', '고지전'에서 강렬한 눈빛을 선보이던 이제훈은 순둥이 대학 초년생이 됐고, '특수본'의 열혈형사 엄태웅은 마음 한 켠에 담아두었던 첫사랑의 등장에 조심스레 흔들리는 건축가가 됐다. '해를 품은 달'에서 핏빛 로맨스의 주인공인 한가인은 갑자기 집을 지어달라고 첫사랑을 방문하는 시크한 도시여자로, '드림하이'에서 통통튀던 수지(미쓰에이)는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 온 예쁘장한 음대생으로 분했다.
누구나 우리 옆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보통의 도시남녀들. 별반 다르지 않는 이들은 스크린 속에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보는 사람의 감성과 추억을 더욱 날카하게 자극한다.
러닝타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 채워진 이 영화에서 '복고'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는 이를 울리고 웃기는 여러 감정들은 이런 '옛 것'에서부터 발생한다.
조심스레 다뤄야 했던 CD 플레이어, 그 안에서 가득 흘러나오는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 강의 시간에 울려 교수님한테 지적받던 삐삐, 그룹 H.O.T의 '캔디'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 친구의 알록달록한 복장 등 영화는 복고 장치를 유머로 적극 활용한다. '아 저때 정말 저랬는데'라며 옛 추억을 자극하는 이런 옛 것들은 기분 좋게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옛날스런 이야기가 살살 가슴을 찌른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으로 전화걸어 당장 만나자고 해서 시원하게 말로 풀면 될 것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애탄 마음을 부여잡고 기다리고 조심스럽다. '에이, 요즘 세상에 누가 저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첫사랑은 어딘지 마음이 아프다. 과거 그 시절, 어쩌면 내 얘기고 어쩌면 내 친구의 얘기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웃기기만 했던 주인공의 티셔츠를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입었을 때, 그 가슴 저미는 기분이 영화의 느낌과 맞닿아 있다.
한편 '건축학개론'은 건축가 승민(엄태웅) 앞에 15년 만에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는 서연(한가인), 두 사람이 함께 집을 완성해가는 동안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새로운 감정을 쌓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첫사랑이라는 감성적 소재에 '건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녹여냈다. 잔잔한 복고 감성 속에 적절한 유머와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로 관객들의 눈을 붙잡는다. 2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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