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묘미 중 하나는 해석의 자유이다. 야구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설가’가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야구 보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야구 관련 기사도 비슷하다.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 팬으로서 야구 기사들을 접하며 행간에 무엇이 있는지 해석해 본다는 의미에서 이 시리즈가 탄생했다. 절대 특정인이나 야구단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닌 야구 기사의 또 다른 묘미를 위한 코너임을 분명히 한다. [편집자주]
프롤로그
유대왕 헤롯은 타고난 의심병 환자였다.

그것 때문에 (6명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세 명의 자식을 죽였다.
의심의 대마왕, 의심의 절대 아이콘이다.
헤롯왕 처럼 이 글은 그냥 사사로운 의심에서 출발한다.
의심의 시작
히어로즈가 애리조나에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1월 말이었다.
김병현이 첫 번째 캐치볼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가볍게 공을 주고 받다가 캐치볼 거리가 40m 정도까지 늘었다. 그러나 김병현은 "조금 더, 조금 더"라고 하더니 거리를 60m까지 늘렸다. (중략) 지켜본 김시진 감독은 "캐치볼하는 것만 봐도 든든하다. 얼마나 뛰어난 투수인지 알 수 있다. 오늘 캐치볼만 보면 투구 밸런스를 바로 잡을 게 없겠다"면서 흡족해했다.” (A매체)
읽자마자 바로 감이 온다. '훌륭한 구라다'.
3월 초. 이번에는 첫 라이브피칭(그냥 서 있기만 하는 타자를 상대로) 때였다.
"신인 한현희는 "병현이형이 아직 100%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저렇게 공을 부드럽게, 원하는 곳에 던졌다. 정규시즌에는 100%로 나설텐데, 타자들 초토화시키겠다"며 웃었다.
마무리 손승락은 한술 더 떴다. "첫 라이브피칭이었는데도 긴장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던졌다. 타자들 압도하는 모습을 보니 병현이형이랑 같은 팀이라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B매체)
당연하지, 타자가 서 있기만 하는 건데 긴장할 일이 뭐 있어...거기에 압도까지???
무릎을 치며 감탄한 절정의 기사는 바로 며칠 전에 나왔다. 두번째 라이브피칭 때다.
"4번 박병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구종을 미리 알려주고 타석에 들어가는 라이브 피칭에서 박병호는 김병현의 초구는 그냥 흘려 보냈다. 방망이가 아닌 눈으로 공을 때려 본 박병호는 "직구였다. 그런데 공이 떠오르는게 보였다. 구속보다는 볼 끝이 좋았다"며 김병현표 업슛을 체감했다.
김병현이 두번째로 던진 공은 역회전이 먹힌 싱커성 변화구였다. 직구처럼 날아오다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 들어온 공이 박병호의 방망이 약간 안쪽에 박혔다. 그 순간 박병호의 방망이가 산산이 조각나며 동강이 났다. 박병호는 타격케이지를 빠져나오며 "영광이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김병현을 상대한 기쁨을 표시했다.(C매체)
영광이고, 목소리가 떨렸단다. 기사 말미를 보니 김병현의 몸상태가 70~80%라고 했다.
다 죽었다. 100%만 되면….
뻥카는 원래 액션이 크다?
뻥카. 있어 보이는 말로는 블러핑 bluffing이라나? 낮은 패로 높은 패를 잡는, 그야말로 구라의 정수를 일컫는 말이다.
"구라 칠 때 상대방 눈을 보지 마라" 불후의 명작 에서 짝귀가 한 말이다.
히어로즈 캠프에서 쏟아지는 김병현 찬가가 온 세상을 메아리 친다. 그 소리가 클수록 이상하다는 의심이 든다. 헤롯 같은 의심병일거다.
여기서 첫번째 질문이 나온다. "그렇게 좋은 거 언제 보여줄 건데?"
1월 말 인터뷰를 보면 김시진 감독은 김병현의 투입 시기를 5월 쯤으로 잡았다.
그러다가 요즘 나온 기사를 보면 4월말 혹은 5월초 선발진으로 기용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얘기했다가 뒷부분에는 한 발 뺀다. '선발이 쉽지 않다면 불펜으로 돌릴 계획'이라고. (3월 4일 D매체)
그렇게 좋다면서…목소리까지 막 떨리는데…왜 개막하고 한달이나 지나서 쓰겠다는 건가.
그것도 아직 선발인지, 불펜인지도 모르겠고.
1년 전에도 그랬다
딱 1년 전. 그가 라쿠텐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였다.
우리도 다 아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BK를 보고 "(일본 최고의 마무리인) 후지카와 큐지에 꿀릴 게 전혀 없다 (藤川球兒より全然ええわ"고 극찬했다.
사토 요시노리 투수코치도 '물건이 다르다 (モノが違う)'며 감탄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 다뤄졌던 얘기들이다.
그래 놓고 이들은 1년 내내 한번도 기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뒤에 또 나온다)
물론 호시노나 사토가 김시진 감독, 정민태 코치 보다 선수 보는 눈이 높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근거…하나도 없다.
이쯤에서 BK와 전격 계약을 성사시킨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를 등장시켜 보자.
1월 말 입단식에서 "김병현은 우리 팀 우승을 위한 중요한 퍼즐"이라고 했다. '중요한 퍼즐' 너무 멋진 말이다.
입단식 이틀 전인가? 이장석 대표는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
기자 : 경기적으론 김병현에게 어떤 기대를 하십니까.
이장석 대표 : 개인적으로 올 시즌 기대감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기자 : 네.
이 대표 : (김병현이) 5경기만 등판해줘도 좋을 듯싶어요.
기자 : 네? 5경기요? 음, 그렇다면 올 시즌을 김병현이 몸을 만드는 기간으로 생각하겠다는 뜻이군요.
이 대표 : 네, 선수 자신도 올해를 재활기간으로 삼았으면 해요. (2012년 1월 19일 E매체)
역시 CEO다운 호연지기다. 16억을 베팅 했는데, 5경기만 나와도 괜찮다니...
그래서 두번째 질문이다. "진짜 두려운 게 뭐냐?"
4년은 어쩔 거냐
그의 나이 서른 셋. 파워피처의 나이 치고는 쫌 그렇다.
하지만 나이는 뭐,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괜찮다고 치자. 박찬호 보다 여섯 살이나 젊지 않은가.
진짜 걸리는 점은 지난 4년간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야구답게 한 것이 2007년(10승 8패)이다. 이후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일본리그를 거쳤다.
판단하기에 가장 중요한 작년. 2군에서 18경기 출장, 20.1 이닝을 던졌다. 평균자책점 2.66. 4월에 부상을 입어 두 달 가까이 못 나왔다.
아쉽게도 김병현의 작년 모습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하필이면 끝내기 안타를 맞았던 5월27일 게임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Ham9uJca_EQ
http://www.youtube.com/watch?v=ulVrAAE9giE&feature=related
여기서 보면 구속은 140~143km 정도로 찍힌다.
이 보다 한 달쯤 뒤인 7월 2일 동영상도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k0oYksX41l8&feature=related
이건 김병현만 크로즈업 된 화면이라서 투구는 알 수 없지만, 던지고 나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투구폼을 점검하기도 한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잡스런 동작이 많다는 거, '나 지금 별로 안 좋다'는 얘기다.
전성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007년 같은 공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걸 봤다는 사람, 아직 못봤다.
라쿠텐에서는 찍혀서 그랬다?
BK가 라쿠텐에서 짐 싸고 얼마 뒤, 라는 신문에 눈길 끄는 기사가 실렸다.(11월17일)
신문사 데스크와 라쿠텐 담당기자가 문답으로 대화하는 형식의 글이다.
데스크가 "시즌 전에는 호시노 감독이나 투수코치가 그렇게 칭찬하더니 왜 한 경기도 안쓰고 잘랐냐"고 묻는다.
기자의 대답 : 실은 김병현에 대해 팀 내에서의 평가는 낮았다. 저 정도의 실력으로는 쓸 수가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마도 2군 코칭스태프에서 올라온 보고 내용을 취재했으리라 본다.
기자는 대화 말미에 "뭔가 또 다른 게 있다(何かありますね)"고 말했다.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뭔가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다. 유명한 ‘코치 멱살잡이 사건’이 아닐까 싶다.
이 사건. 올해 1월 20일 한 인터뷰 기사 속에 일단의 내용이 있다.
"언젠가 한 번 투수코치랑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등판 기회를 줘서 나름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고, 안타를 맞고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잘 마무리하고 경기를 끝냈다. 그런데 그때 코치가 날 불러선 ‘왜 제대로 공을 던지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통역한테 ‘뭐라고 그러는데?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하고 물었다. 통역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코치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일본어로 크게 화를 내며 뭐라고 하는데 난 도저히 그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고, 내가 왜 걔네들한테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났다. 나도 그래서 한국말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뭐가 문제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장면을 코칭스태프랑 선수들, 감독이 보게 됐다. 만약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불러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려 놓고, 제대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고 몰아붙이는 건 무슨 경우고, 어린 선수도 아닌 나이 서른 넘은 외국인 선수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러대는 건 또 어느나라 법인가? 그때 너무 놀랐다. 일본 야구에 대해, 일본 지도자들에 대해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이 인터뷰에는 전후 사정이 잘 안 나와 있다. 정신병자가 아닌 담에 코치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그랬을 리는 없고...하여튼 그 전부터의 뭔가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상식에 준해서 따져보자.
내가 2군 코치다. 내 밑에 야구를 아주 잘 하는 애가 있다. 근데 밉다. 그래서 1군에도 "걔 별로예요. 딴 애 쓰세요"라고 보고할 수 있는 배짱 좋은 2군 코치? '없다'.
에필로그
왜 이렇게 김병현을 디스 하냐고?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냐고? 못했으면 좋겠냐고?
아니다. 필자는 소비자다. 돈을 주고 사는 건 아니지만 엄연한 뉴스의 소비자다.
적어도 뉴스를 만들어내서 공급하는 사람이나 조직에 대해서 소비자라고 말할 수 있는 개념이 성립한다고 본다.
소비자는 왕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적당히 좀 하라고”. “띄워주는 거 웬만큼 하라고.”
김병현은 깊은 산 속에서 내공을 연마하다가, 느닷없이 마구 하나를 들고 ‘짠’ 나타난 선수가 아니다.
지난 4년간도 하느라고 했지만 잘 안됐던 선수다. 그러니까 또 안될 지도 모른다.
구단이건 감독 코치건, 동료들이건, 그리고 그걸 전하는 미디어건 이건 좀 지나치다.
이렇게 기대치 레벨만 잔뜩 높여 놓고, 나중에 안되면 그 때 배신감은 누가 책임질건가.
있는 만큼만 얘기해 달라.
그게 BK에 대한 배려다.
백종인 (칼럼니스트) sirutani@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