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를 세워서 치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치면 실전에서 1할 타자로 전락할 것 같아서 다시 컨택 특화 타격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데뷔 이래 사실상 처음 4번 타자라는 무거운 갑옷을 걸친 사나이. 그러나 그는 전임 4번 타자가 남기고 간 큰 칼 대신 제 손에 맞는 창을 쥐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타격으로 팀에 최대한 공헌하기 위해서다. ‘쾌남’ 홍성흔(35. 롯데 자이언츠)이 부담감보다 장점 특화를 앞세우는 팀의 네 번째 타자로서 2012시즌 활약을 꿈꾼다.
2009시즌 프리에이전트(FA)로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이래 홍성흔은 세 시즌 동안 3할4푼1리 45홈런 247타점으로 맹활약 중이다. 특히 2010년에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음에도 3할5푼 26홈런 116타점으로 홈런-타점 면에서 커리어하이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 홍성흔은 이대호(오릭스)가 남기고 간 롯데의 새로운 4번 타자 자리를 꿰찼다. 원 포지션 포수 복귀도 아니고 지난해처럼 좌익수 출장이 아니다. 수비에 대한 부담을 벗은 대신 이제는 공격력에 대한 팀의 기대치가 높아졌다. 선수 본인도 스프링캠프 동안 장타력을 더욱 높이는 데 한동안 집중했으나 타격 밸런스가 맞지 않아 속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잘 안 되더라고. 처음에는 ‘나는 4번 타자다’라는 데 스스로 의식하고 힘을 싣는 타격을 하려고 했는데 밸런스가 잘 안 맞아서 영 안 되더라. 게다가 방망이를 세웠다가 치려니 바깥쪽 공이 더 멀어보여서 제대로 못 치겠고. ‘이러다가 시즌 때 1할 타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전지훈련 막판에는 편하게 컨택에 집중하는 쪽으로 중점을 두었다. 다행히 지금은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홍성흔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재취득한다. 롯데 잔류와 시장 재평가 여부는 둘째 치고 일단 좋은 성적을 올려야 FA 재취득 후 제대로 된 평가와 자신이 원하는 계약 조건을 요구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홍성흔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구애받고자 하지 않았다.
“FA에 대한 부담감은 최대한 벗어던지려고 한다. 지명타자로서 내가 얼마나 좋은 성적을 보여주느냐 보다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재로서 가장 중요하다”.
그는 1999년 프로 데뷔 후 짝수해에 성적이 좋은 경우가 대체로 많았다. 두산 시절이던 2004년 홍성흔은 165안타를 때려내며 데뷔 후 처음으로 계량 부문 타이틀 홀더가 되었고 2008년에는 3할3푼1리의 고타율로 타격 2위에 오르며 2007년 말 맞았던 선수 생활의 위기를 스스로 극복했다.
2010년에도 부상이 아니었다면 30홈런-120타점 이상을 노릴 만 했다. 2001년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획득과 2009년 3할7푼1리의 타율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짝수해가 홍성흔에게 더욱 좋은 성적표를 선사했다. 선수 본인에게 이를 이야기하자 “듣고보니 그렇네”라며 웃었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더 느낌이 좋아지는 것 같다. 일단 아프지 않은 몸으로 체력적으로도 젊은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무적이다. 2009년처럼 안타를 많이 치고 득점권에서도 좋은 타율을 보여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드시 20홈런-80타점 이상을 기록하겠다는 개인 목표보다 정확한 타격으로 나서고 싶다. 그저 팀의 네 번째 타자일 뿐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싶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 신시내티 레즈서 정확한 타격을 자랑하는 4번 타자로 나서던 션 케이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동료들로부터 신임이 돈독해 The Mayor(시장)라는 별명을 얻었던 케이시는 가공할 만한 장타력을 뽐낸 타자는 아니었으나 통산 타율 3할을 기록하며 정확성을 자랑한 4번 타자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거포가 아닌 컨택 능력이 뛰어난 중심 타자를 꿈꾸는 홍성흔은 2012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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