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5일 두산의 3루수 김동주는 넥센전(목동)에서 프로데뷔(1998년) 이후 처음 선발 1루수로 출장했다. 2008년 SK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3회와 4회, 연이은 선두타자 출루 허용 악송구로 경기 중 잠시 1루로 쫓겨난(?) 적은 있었지만, 정규리그에서 스타팅이나 수비이동의 형태로 1루 자리에 선 것은 대학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두산의 붙박이 3루수 김동주를 생소한 1루수 자리에 세우려 한 것은 최준석을 지명타자로 돌려 그의 타력을 극대화시키고 이원석을 3루수로 기용, 다소 불안감을 보이고 있던 내야수비력까지 일거에 보완하고자 하는 김광수 감독대행의 복안이 담긴 기용술이었다.
하지만 자리가 너무 낯선 때문이었을까? 김동주는 0-3으로 끌려가던 5회말 무사 1.2루의 위기에서 넥센의 보내기 번트타구를 잡은 투수 김승회의 지극히 평범한 송구를 잡다 놓치는 실책을 저질렀고, 결국 이 실책이 빌미가 되어 두산은 5회말에만 무려 7실점하며 맥없이 경기를 내주어야 했다.

경기 중 수비수가 실책을 범했다 하더라도 실점과 연결되지 않고 무사히 이닝이 끝났다면 아군 투수의 투구수가 늘어나버린 것에 따른 부작용은 피할 수 없지만 실책 당사자에 전해지는 충격파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인 얘기일 뿐, 이닝이 진행되는 동안 늘 머릿속에는 투수가 위기를 잘 막아내 자신의 실수가 그저 덮여질 수 있기를 소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동주처럼 선수는 물론, 야구 전반적으로 미심쩍은 결정이나 실수가 그 한번에 그치지 않고 좋지 않은 방향이나 결과로 들 불처럼 번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러한 유형들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투아웃 이후 주심이 제3스트라이크 째의 다소 애매한 존 안으로 들어온 투구를 볼로 선언, 아웃을 모면한 타자가 안타로 주자들을 홈으로 불러들였을 경우다. 경기 중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 한번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투수는 당연 입이 튀어나올 일이다.
만일 제3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있었던 투구를 볼로 판정한 것에 대한 주심 스스로의 확신마저 서지 않는 상태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주심이 겪는 심적인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아까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더라면…’하는 뒤늦은 미련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때는 늦어있고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 이후가 된다. 결과적으로 스트라이크 아웃을 피해 간 타자가 다른 방법으로라도 아웃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지만 때로 속절없는 연속안타가 줄줄이 터져 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그 이닝의 체감길이는 한없이 길고도 길다.
이러한 정신적 고문(?)은 공식기록원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1995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 프로 9년간 통산 23승을 거둔 우완투수 이원식. 마운드에서 오래 버틴 날보다는 일찍 마운드를 내려간 회수가 더 많았던 그였지만 1990년대 후반, 어느 경기에서인가 1회에 내야안타 하나만을 허용한 것을 끝으로 경기 후반까지 노히트 행진의 놀라운 호투를 선보여 공식기록원을 경기 내내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던 일은 생생한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공식기록원이 마음을 졸여야 했던 까닭은 아주 단순하다. 그날 이원식이 허용했던 유일한 내야안타는 다분히 실책성을 머금은 타구였는데 그 타구판정에 대해 기록원 스스로가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원식이 1안타 완봉승을 거두기라도 하는 날엔…. 경기 후반 이원식이 투구수 과다로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까지 기록원의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을 것이 뻔하다.
이것 말고도 자책점 결정 때에도 기록원이 마음 고생을 하는 일이 가끔 생겨난다. 투아웃 이후에 애매한 타구가 나와 안타로 기록했는데, 이후 연이은 안타로 투수의 실점이 줄줄이 이어질 때가 그렇다.
애매한 타구를 실책으로 판정했더라면 그것이 제3아웃 기회가 되어 투수로서는 이후에 홈런을 맞아도 자책점이 되지 않았을 것인데, 그만 기록원의 판정선택 하나로 인해 실점 모두가 자책점으로 기록되며 투수의 평균자책점(방어율)이 한없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록원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자책감이 스멀스멀 밀려들고 표현은 못하지만 투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배짱도 없어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이 좀처럼 바라는 대로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여가는 양상을 두고 흔히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 부르고 있는데, 지금까지 들여다본 것처럼 야구에서도 이러한 머피의 법칙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야구가 곧잘 사람의 인생사에 비유되곤 하는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김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