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설이 된 선배의 번호를 용감하게 단 선수가 있다.
지난 18일 넥센 히어로즈 선수단은 첫 시범경기인 청주 한화 이글스전부터 새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경기 전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 사이로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큰 체격의 선수가 있었다.
원래 넥센에서 10번은 '영원한 캡틴' 이숭용(41)의 것이었다. 이숭용은 1994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뒤 10번을 달았다. 그는 그 후로 지난해까지 이적 없이 한 팀에서 18년을 뛰는 동안 한 번호를 유지하며 주전 1루수로 뛰었고 5번이나 주장을 맡아 선수들을 이끌었다.

지난해 9월 은퇴한 이숭용의 번호를 바로 이어받은 선수는 바로 오재일(26)이다. 지난해까지 35번을 달고 뛰었던 오재일은 이숭용이 은퇴하자 바로 10번을 물려받았다. 그는 "원래 잘하는 선수의 번호를 달면 더 야구가 잘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평소 닮고 싶고 존경하는 선배님이라 번호를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팀내 경쟁은 의외로 없었다. 오재일은 "다들 이숭용 선배님 만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10번을 달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자신은 부담이 없을까. 오재일은 "부담감은 없다. 잘할 자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오재일은 팀의 마지막 연습경기였던 지난 16일 한화전에서 팀이 6-7로 뒤진 9회초 무사 1,2루에 대타로 나와 송신영을 상대로 우월 결승 역전 스리런을 날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0번 유니폼을 입고 날린 그 홈런으로 그는 달라진 존재감을 증명했다.
올해 8년차지만 오재일은 항상 1루수 이숭용과 조중근, 그리고 지난해 이적해온 박병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거포로서의 두각을 나타내며 김시진 감독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김 감독은 그를 지명타자로 중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팀의 보물같은 존재인 캡틴 이숭용의 번호를 물려받은 오재일. 공교롭게 이대호, 양준혁, 최준석 등 국내 유명 거포들의 등번호도 10번이었다. 올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오재일이 올 시즌 '10번' 타자로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autumnbb@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