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도중 전열 이탈하면서 후배들에게 미안했어요. 이제는 제가 도움이 되어야지요”.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좌완 에이스. 그러나 지난해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재활하며 지난 시즌 팀이 상위권에서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순간을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실전 투입이 빠르다는 평에 아랑곳 없이 자기 공을 던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봉타나’ 봉중근(32. LG 트윈스)의 책임감은 그만큼 대단했다.
신일고 시절이던 1997년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은 뒤 10시즌 동안 미국에서 야구인생을 꾸렸으나 확실한 입지를 굳히지는 못했던 봉중근은 2006년 중반 미국 생활을 마치고 LG에 1차지명 입단했다. 첫해인 2007년 6승으로 아쉬움을 비췄던 봉중근은 2008년 11승, 2009년 11승, 2010년 10승을 거두며 LG 마운드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특히 봉중근의 활약은 국제대회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2009년 WBC서 봉중근은 세계 유수의 강호들을 자신의 역투로 꺾는 역투를 선보이며 한국의 준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2010년 후반기부터 팔꿈치 통증으로 고전했던 봉중근은 결국 지난해 6월 미국 LA 조브 클리닉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쳤다. 당시 상위권에 위치했던 LG는 결국 추진력을 잃고 공동 6위로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비운을 맛보았다.
그리고 2012년. 봉중근은 최소 1년 이상의 재활이 필요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도 현재 계투로 출장 중이다. 지난 20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서 1-1로 맞선 8회말 마운드에 오른 봉중근은 5개의 공을 던져 삼자범퇴로 가볍게 실전 경기 맛을 보았다. 최고구속도 140km로 9개월 전 수술받은 투수 답지 않은 페이스였다.
경기 전 봉중근은 “잠실에서 300일 넘게 등판하지 못하다 동료들과 덕아웃에 앉아 등판을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라며 웃었다. 그에게 잠실 마운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커브도 1~2개 던져볼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많은 분들이 제 실전 투입이 빠르다고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 오승환(삼성)을 만났는데 그날 승환이가 해줬던 조언이 제게 많은 자신감을 주더군요”.
한국 최고 마무리투수인 오승환 또한 단국대 시절이던 2002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봉중근이 겪는 재활의 고난을 알고 있는 만큼 오승환은 봉중근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걸어야 하는 지 야구 후배이자 재활 선배로서 조언했다. 그리고 봉중근은 오승환의 이야기에 굉장히 고마워했다.
“형이 안 아프면 되는 것이라고 그러더군요.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아프지 않은 데도 ‘다시 아파지면 어떻게 하나’라고 지레 겁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재활 프로그램도 거의 다 끝났고 팀에서 제게 원하는 1경기 투구 할당량도 30구 미만이니 그 정도 던지고 나서 회복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승환이의 조언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오승환은 실전 투입에 있어 이미지 트레이닝에도 힘을 쏟는 봉중근에게 귀중한 조언을 했다. 봉중근은 “승환이가 배팅볼을 던지면서 감을 익히는 것도 좋다고 하더라”라며 자신이 배운 한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오키나와에서 봉중근이 오승환을 만난 것은 단 하루 뿐이었으나 조언 효과는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언젠가 저도 선발로 뛰어야지요. 그만큼 타자를 상대하는 감각을 키워야 하는데 승환이가 배팅볼을 던져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하더군요. 일단 지금은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팀 투수진의 누수가 큰 만큼 일단 봉중근은 좌완 계투로서 감을 잡으며 선발로 뛸 미래를 기약할 예정이다. 그는 “내게 주어질 계투 실전 등판은 선발로 뛰기 위한 재활 과정과도 같다”라며 실전 조기 투입에 대한 불안 심리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아프지 않다’라는 데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봉중근이 2012시즌을 도움닫기의 한 해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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