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서태지는 왜 나타나지 않을까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2.03.23 12: 15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등장한지 벌써 20년이 지났으나, 아직 그 파급력을 뛰어넘는 차세대 뮤지션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무수한 앨범이 발표되고, 수많은 음악들이 히트했지만 20년 전처럼 엄청난 ‘충격’을 주진 못했다.
왜일까. 가요관계자들은 또 한번 ‘영웅’이 등장하기엔 시대가 상당히 변했다고 토로했다.
# 실시간 인터넷 시대, 신격화 안통해 

서태지가 신격화 시켜놓은 톱스타의 위상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지상으로 내려왔다. 전국민이 휴대폰 카메라를 지니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 스타들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모습부터 식당에 앉아 회식을 즐기는 모습까지 촬영 당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공개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롤러코스터의 경사도 극심해졌다. 우연찮은 기회에 검색어 1위를 휩쓸며 유명인이 됐다가도, 한순간의 실수로 악플 세례를 받고 최대한 빨리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스타들도 이제는 친근함이 곧 무기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연예인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토크쇼에서 먼저 굴욕담을 폭로하며 검색어 1위를 노리고, 아이돌 스타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진을 업로드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가늠하고자 한다. 인지도 경쟁이 극심한 현 연예계에서, 베일에 싸인 동경의 대상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셈이다.
# 해외 음악, 네티즌이 더 잘 알아
서태지가 처음 국내 가요계에 던진 충격은 한국어로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랩이라는 장르 자체를 서태지를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는 당연히 서태지에게 ‘천재’ 이미지를 가져다줬다.
실제로 그는 혁신적이었다. 국악과 댄스를 접목하고, 갱스터 힙합을 가져와 한국화 했으며, 헤비메탈과 발라드를 마음껏 오갔다. 충격적이고, 놀랍다는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요즘 신곡으로 당시 수준의 사회적 파장을 끌어내려면 그 충격의 강도는 훨씬 세져야 하는 것이다. 한 가요관계자는 “서태지가 ‘서태지’인 것은 최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검색 한번이면 지구 반대편 히트곡을 들어볼 수 있게 됐다. 그 어떤 것을 접목하고 새로 도입해도, 네티즌은 쉽게 오리지널을 찾아낸다. 지금 서태지와 같은 뮤지션이 등장했을 때, 그가 서태지와 같은 ‘획기적인 천재’로 평가 받을지는 의문”이라고 평했다.
# 매체가 ‘너무’ 많아
매체는 수도 없이 늘어났다. 그래서 오히려 ‘영웅급’ 스타 탄생은 어려워졌다. 문화평론가 강태규는 이제 서태지 만큼의 영향력 있는 스타는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시에는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소수의 방송사와 언론사가 서태지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모든 국민이 서태지를 모를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매체가 많아져 이슈가 분산되면서 그와 같은 강력한 스타를 만들어내기가 오히려 어려워졌다. 매체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좋은 뮤지션이 나와도 충분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싱어송 라이터의 상황은 정말 어두워졌다. 강태규는 “최근에도 의미가 있는 음반과 가수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볼 때, 이들의 성과는 2~3만장 판매, 음원차트 하루 1위에 그치고 만다. 이 성적이 과거 밀리언 셀러 만큼이나 값진 것이지만, 사람들이 체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메시지? 쿨하지 않아
사회 이슈를 다루며 ‘대박’을 터뜨리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여전히 심각하고 불편한 문제가 산재해있지만, 이제 대중은 판타지로 눈을 돌린 상태다. 가상의 공간에서 완벽한 남자와 연애하는 스토리가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재미있긴 한데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언어파괴적 가사가 음원차트를 도배하는 중. 서태지조차도 지난 2009년 ‘모아이’에서는 속세를 떠나 이국적인 풍경을 노래했다.
사회에 대한 분노는 쿨하지 못한 감정이 됐다. 정면으로 맞서기 보단 비꼬고 풍자하는 개그가 인기를 얻고, 진지한 소재는 투자자로부터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대들은 “이제 그럼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치며 분노하는 것보다 수능을 잘 봐서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20대는 시대에 유감을 표하기보다는 동기들을 제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성공이라고 판단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대에 ‘정색’하는 것은 오히려 촌스러울 수 있다. 한 인기 힙합그룹 관계자는 “사회적인 담론을 다룬 곡도 있지만 소소한 일상을 노래한 게 훨씬 더 잘 팔렸다. 사회문제 보다는 개인에 집중하고 있는 현 대중의 정서가 음악 소비에도 직결되고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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