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이하 초한지)의 여주인공 정려원의 연기를 본 시청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이게 방송이 될 수 있는 건가?'라고.
그러나 정려원은 이런 깡패 같은(?) 콘셉트를 본인 특유의 매력을 더해 훌륭히 소화해내 '욕쟁이' 백여치(정려원 역)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했다.
최근 그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백여치스러움'을 강조하듯 빨간 머릿결을 휘날리며 기자와 마주했다.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근황을 전했다.

"'초한지' 촬영 끝난지 9일 됐다. 지면 촬영하고 인터뷰하고 회사가고 그 외에 남는 시간에는 잠을 많이 잤다. 아직 푹 쉬지는 못했고, 조만간 화보 촬영 차 프랑스로 떠날 예정이다."
정려원은 '초한지'에서 빨간 머리스타일을 고집했다. '초한지'가 끝난 후에도 그는 그 머리스타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곧 변화를 주려는 모양이다.
"지면 촬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지 백여치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밤부터 봄을 타서 그런지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싶더라."(웃음)
'초한지' 백여치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연히 '욕'이다. 감칠맛 나게 욕을 구사하기 위해 정려원은 예습까지 철저히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감칠맛 나게 욕을 한 것 같다.(웃음) 처음에는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랐는데 욕에는 뉘앙스가 있다. 또 매회 색다른 변화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서 변화를 줬다. 실감나는 욕을 위해 어감이 비슷한 단어들을 인터넷을 검색해서 공부했다."(웃음)
정려원은 극 중 거대 그룹의 손녀딸 재벌녀 백여치로 분했다. 살인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게 된다. 돈도 다 떨어지고 결국엔 노숙자로 전락하는 굴욕을 겪지만, 정려원은 오히려 더 편했다고 한다.
"노숙하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재밌었다. 의상이 진짜 편했다. 메이크업 손질도 안 해도 되지, 얼마나 편한가?(웃음) 드라마에서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을 때도 있다. 이는 마치 화보 촬영하는 느낌이다.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연기하기에는 불편한 점도 있더라. 실제로 몸이 편한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참 좋다."
정려원의 성격은 참 밝았다. 어딜 가나 촬영장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할 만 했다. '초한지' 촬영장에서는 거의 막내다 보니 재롱(?)또한 많이 부렸다고 한다.
"성격이 심하게 밝다.(웃음) '초한지' 촬영장에 있는 모든 분들이 정말 잘 해줬다. 촬영장에 있는 분들은 잠도 못 자고 다 고생하는 분들인데, 내가 좀 힘들다고 인상 쓰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왕 찍을 거 재밌게 찍자고 생각했다. 역할도 천방지축이니깐 선생님들이 많아서 재롱도 많이 부렸다."(웃음)
상대역 이범수와의 호흡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주저 없이 밝혔다. 이범수의 리드 덕에 수월하게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이범수 선배와의 호흡은 정말 좋았다.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선배님이 여치가 더 돋보이도록 아이디어도 많이 내주셨다. 이범수 선배와는 정말 재밌게 치고받고 놀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초한지'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범수와 정겨운에 대해서는 "둘 다 좋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현실의 정겨운과 '초한지' 속 이범수가 좋다고 한다.
"이범수, 정겨운 둘 다 좋다.(웃음) 많이 물어보더라. 나는 '초한지'의 유방(이범수 분)이 좋고, 현실의 정겨운이 좋다. 정겨운은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나이답지 않게 묵직하고 뚝심도 있더라."
'초한지'에는 유독 단체신이 많이 등장했다.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배우들도 단체신에는 부담이 많을 터. 정려원은 단체신을 큰 전쟁에 비유했다.
"떼신(단체 촬영 장면)이 엄청 많아서 매번 큰 전쟁을 한 번씩 치렀다는 생각이 들더라. '초한지'는 다른 드라마보다 압축돼 있다. 사건이 커지면서 판이 커지고 일이 커지니깐 많은 배우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이 잦다.

백여치를 통해 정려원은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만큼 여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려원은 여치를 연기하기 전에는 의구심이 앞섰다.
"여치는 정말 말도 안 돼는 캐릭터였다. TV에 이런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걱정했다. 욕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도 되는 거냐고 제작진에게 물었다.(웃음) 여치 캐릭터가 굉장히 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캐릭터의 장을 열게 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생각보다 시청자분들이 여치를 빠르게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 여치스러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밉상인데 사랑스럽게 그려준 작가님에게도 고맙다.”
1981년생인 정려원은 올해 32살이 됐다. 주변에 하나 둘 씩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 또한 결혼에 대한 생각을 내비쳤다.
"사실 결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결혼이 부러워지더라. 자신과 똑 닮은 아기를 얻는 다는 것을 생각해보니깐 미래가 궁금하긴 하더라. 마음 같아선 최대한 빨리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하고 싶다."
정려원도 여느 여성처럼 '박해일 앓이'에 빠져 있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려원은 박해일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상형은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배우는 박해일 씨다. 진짜 좋아한다.(웃음) 여성스럽기도 하고 남성스럽기도 한 눈이 매력적이다. 영화계에서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웃음) 작품으로 만났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정려원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배우보다는 신뢰를 주는 배우를 꿈꾸고 있다. 또 다시 한번 밝고 에너지 넘치는 역할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핫하고 사랑받는 배우는 많다.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시청자가 나의 연기를 느긋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한다. 다음에도 에너지 넘치고 밝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추리극에도 흥미가 있다. 유쾌한 흥미극이 제격일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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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