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김응룡 감독 모시던 2004년 가장 힘들었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3.24 09: 38

"우리나라에 8명밖에 없는 프로야구 감독, 보기와는 달리 참 힘든 직업입니다".
봄비가 부산을 적신 지난 23일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양 팀 사령탑 입에서 나온 화두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의 어려움'이었다. 양승호 감독은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2위였지만 "지금은 잠복기다. 성적이 나빠지면 언제 다시 성토가 나올지 모른다"며 감독 자리의 스트레스를 표현하곤 한다.
KIA 선동렬(49)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선 감독은 "감독은 선수들에 성적 책임을 묻지 않는게 맞다. 감독은 선수들이 운동을 잘 할 수 있게끔 해 주면 된다. 다만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때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감독 자리의 무게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 감독은 쉽게 감독을 바꾸는 현재의 풍토를 안타까워했다. "감독 임기를 못 기다려주는 게 문제다. 임기를 채우는 것 보다 중도에 그만두는 게 80%는 될 것"이라면서 "임기를 채워줘야 감독이 소신을 갖고 길게 본다. 난 운이 좋아 부임 첫 2년동안 우승을 해서 압박이 적었지만 나머지 감독들의 스트레스는 무척 크다. 부디 참아달라"는 당부를 곁들였다.
"감독이 급해지면 모두 급해진다"며 한참 열을 올리던 선 감독. 함께 있던 취재진이 '감독 자리가 힘들어서인지 (코치이던) 2004년 표정이 가장 밝았던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이날 건너편 벤치의 양승호 감독이 "코치 시절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기에 나온 이야기였다.
그러나 선 감독은 "사실 2004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응룡 전 사장은 삼성 감독 시절 2004시즌을 앞두고 아끼던 제자 선동렬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이 때 김 전 사장은 선 감독에 "2년 뒤 감독 자리를 물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2004년 삼성은 에이스 배영수를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삼성은 현대 유니콘스와 9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에 실패한다. 선 감독은 "당시 삼성 선수들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외부 시선에 힘들어 했다. 그래서인지 폭우가 내리던 9차전에서 지고난 뒤 선수들이 경기장 한 구석에서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정말 힘들더라"고 회상했다.
선 감독이 더욱 힘들었던 건 스승 김응룡 전 사장 때문이었다. 당시 지도자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던 김 전 감독에게 어쩌면 2004년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우승 기회였다. 선 감독은 "스승인 김응룡 감독님께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4년엔 정말 고생도 하고 노력했다"면서 "그렇지만 결국 9차전 끝에 지고 말았다. 그 때는 김응룡 감독님께 '투수들을 잘못 가르쳐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씁쓸해 했다.
이후 김 전 사장은 갑작스럽게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선 감독이 뒤이어 삼성 감독에 오르게 됐다. 그리고 선 감독은 2년 연속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정상급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선 감독이 감독 자리에 오르자마자 승승장구한 데에는 2004년 수석코치 시절 남달랐던 고뇌도 한 몫 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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