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선발투수 유망주들을 키우고 싶다. 젊은 선발진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흔들리지 않는 팀을 만드는 게 목표다”.
두산 김진욱(52) 신임 감독의 목표는 명확하다. 취임식부터 ‘토종 에이스 육성’을 목표로 내건 만큼 유망주들의 성장을 통한 강한 선발진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유망주들이 기량을 만개시켜 10년 이상 팀의 주축선수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사실 토종 투수로 이뤄진 막강 선발진 구축은 모든 팀들의 공통된 목표다. 한 경기에서 선발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고 133경기 페넌트레이스에서 선발진이 좌우하는 부분 역시 엄청나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도 에이스 투수의 공은 공략하기 힘들고 팀 전체가 어떠한 작전을 쓰더라도 투수가 너무 잘 던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있다. 매년 수많은 고교선수들이 ‘제2의 누구’, ‘계약금 몇 억’이란 이름표를 달고 당찬 포부와 함께 프로무대에 입성하지만 에이스는커녕 이름 석 자를 알리지도 못하고 사라져간다. 팀에선 코칭스태프의 ‘집중조련’과 충분한 ‘적응기회’등을 선사하지만 프로무대에서 ‘100% 성공 매뉴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두산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폭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고교 유망주 투수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사실상 두산이 키운 순수 선발 10승 투수는 1996년에 입단한 박명환 이후로 전무하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생기면서 에이스 자리는 외국인에게 맡기고 불펜에 구위 좋은 신예투수들을 집중 투입한 까닭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신인들이 정작 입단 후에는 부상과 수술이 반복되며 재활군만 전전하고 말았다.
그대로 놔두면 악순환은 반복된다. 올 시즌 새롭게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목표 달성을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단 전지훈련에서 중도탈락자 제도를 없앴다. 또한 올 시즌 이후 전지훈련에 대한 전체적인 개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선수들의 기량, 연령대, 몸 상태에 맞는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게 해 훈련 중 부상을 당하는 것을 최소화하려 한다.
“1군에서 뛰고 싶은 건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다. 많은 기대를 받고 들어온 유망주들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1군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마무리캠프부터 스프링캠프까지 1군 진입을 위해 무리하게 경쟁하다가 부상을 당하곤 한다. 그래서 지난 스프링캠프에선 애초에 중도탈락자는 없다고 공지했다. 선수들이 무리하게 경쟁하다가 부상당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였다”.
김 감독은 1군을 위한 2군, 팀 성적을 위한 혹사나 희생 같은 부분도 피하려한다. 트레이너에게 전권을 위임해 부상방지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시즌 전 이미 정해진 보직은 큰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끌고 나간다. 선발투수가 무너지더라도 이를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경험이라 바라본다. 투수진 운용에 있어 조급함은 없을 것을 분명히 했다.
“부상과 관련해선 구단 트레이너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다. 아무리 팀 상황이 급하더라도 아픈 선수를 무리해서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트레이너에게도 의학적인 관점으로만 선수를 바라봐달라고 주문했다. 시즌 도중 부상 등의 큰 변수만 아니라면 선발 로테이션을 바꾸는 일 역시 없다”.
지난해 10월 두산 구단이 김진욱 감독을 인선하리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98년 중앙고를 시작으로 2004년까지 고교 야구 감독을 역임했지만 정작 프로에서 지도자 경험이 풍부하지는 않았다. 2007년부터 줄곧 2군 코치를 도맡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재야의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의 신임은 그 어느 지도자보다 두터웠다. 특히 김 감독은 반복되는 부진과 부상으로 선수생활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을 다시 한 번 일어나게 했다. 지난해 프로 입단 9년 만에 비로소 불펜 필승조로 활약한 노경은은 “김 감독님이 없었다면 야구를 놨을 것이다. 김 감독님이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셨다”고 말했다.
지금 시점에서 김 감독의 포부와 도전은 이상론, 혹은 도박으로 보일지 모른다. 정작 시즌이 시작되면 어느 감독도 성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승의 쾌감보다는 1패의 부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마냥 육성에만 전념하다가는 참담한 성적표가 눈앞에 놓인다. 2012시즌 김 감독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두산 마운드는 백년대계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팀은 방향성을 잃고 또다시 좌초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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