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미국 입양아인 주인공의 친부모가 도대체 언제 밝혀질까 궁금했다. 기존의 여느 드라마처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시청자 진을 다 뺀 뒤에야 출생 비밀이 풀릴까 속이 탔다. 모처럼 기발한 소재와 산뜻한 전개로 출발한 주말 드라마가 또 막장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 것이다. 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 바로 '넝굴당' 이야기다.
그러나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으로 연달아 히트를 친 박지은 작가는 이같은 시청자 우려를 삼성 이승엽의 홈런 타구마냥 담장 저 너머로 날렸다. 허울 좋은 국회의원의 공천 포기 뉴스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다.
24일 방송에서 단팥빵을 만드는 방장수(장용 분)는 30여년만에 찾은 친아들 테리강이자 귀남(유준상 분)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 시작한 지 단 9회만이다. '넝굴당'은 아직 갈 길이 먼 드라마다. 초반 인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속을 더 시커멓게 태우며 시청률 장사에 나설수도 있었을 출생 비밀을 시원하게 깐(?) 셈이다.

이에 시청자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먼저 시청률부터 가파르게 올랐다. AGB닐슨 집계에 따르면 이날 '넝굴당'의 전국 시청률은 무려 36.1%로 주말 프로 전체를 통틀어 최강이다. MBC '해를 품은 달'이 종영한 현 상황에서 TV 프로 통합 1등 역시 따놓은 당상이고, 벌써부터 40% 시청률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욕을 먹고 따귀를 맞아도 결국 막장이 시청률 장사에는 최고'라던 방송 드라마계의 속설을 와르르 무너뜨린 '넝굴당'의 역습이다. 등장 인물들 사이사이마다 불륜을 넣고 새끼줄 마냥 혈연관계를 비비 꼬은 다음에 재벌가 시댁과 신데렐라 며느리, 그리고 출생의 비밀에 처절한 복수극을 잘 버무려서 만드는 막장 드라마에 시청자들은 그동안 얼마나 질색을 했던가.
'넝굴당'은 결혼한 부부의 영원한 숙제 고부관계를 모처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룬 작품이다. "시댁 식구 한 명 딸리지 않은 능력있는 고아"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던 방송사 외주 PD 윤희는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된 명문 존스홉킨스대학 출신의 훈남 의사 테리강과 운명적으로 만나 맺어진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방귀남인 테리강의 진짜 가족은 사실 윤희의 전셋집 주인들로 그가 그렇게 피하려던 '식구 많고 간섭 잘하는' 골치 아픈 시댁의 전형처럼 보인다. 드라마 첫 회부터 작가의 암시를 받은 시청자들은 이 둘이 빨리 마주쳐서 어떤 상황을 연출할 지 급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이었다.
귀남을 자처하는 사기꾼의 등장, 귀남 작은 엄마(나영희 분)의 수상한 행동, 계속 엇갈리는 친엄마(윤여정 분)와의 인연 찾기 등은 혹시나 '넝굴당'의 도입부일 귀남 친부모 찾기를 질질 끌수도 있을 대목이다. 이왕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한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이 아예 처음부터 횟수 연장에 대한 유혹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날 장수 일가족이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자녀 둔 시청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막혔던 속이 펑 뚫리는 기쁨을 나눴다. "그래 이제는 이렇게 빠른 전개가 제 맛인거야" 하면서.
'넝굴당'은 주 조연 할 것없이 배우들 모두 딱 맞는 캐스팅에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들의 열연이 더욱 빛을 발하게 만드는 '넝굴당'의 덕목이야말로 막장을 뺐다는 사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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