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감독 "수지 재발견, 흥행보다 기쁘다"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03.29 09: 11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 8일만에 100만 돌파를 이뤄내며 2012년 1분기의 마지막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데뷔작인 공포영화 '불신지옥'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흥행에서는 쓴 맛을 봤던 이용주 감독이 차기작에서 '흥행 감독'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셈이다.  
40살에 데뷔한 그는 또래 류승완, 임필성, 장진, 봉준호 감독들 보다 한참 늦게 감독으로 입문했다. 스스로 "중고 신인이다. 2군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라고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있으면서, '건축학개론' 시나리오를 썼지만 투자와 제작이 쉽지 않았다. 배우 캐스팅도 물론 안됐다. 그렇게 10여년간 '건축학개론'이란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었다.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지난한 시간. 하지만 한국 멜로영화의 명가 명필름에서 시나리오의 진가를 알아봤고, 영화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10여년동안 고쳐 탄생한 완고가 결국 초고와 가장 비슷하다고 말하는 그는 "봉준호 감독님이 초고를 정말 좋아하셨다. 지금 체코에 계신데(영화 '설국열차' 촬영) 영화를 보시면 좋아하실텐데..영화 보시면 아마 '내가 뭐랬어' 이렇게 말씀하실 거다"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90학번(70년생)으로 졸업한 뒤 건축설계사 사무실에서 4년여간 일한 감독의 경험이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영화와 건축. 두 예술을 한데 뭉쳐 '첫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 21세기에 던져진 90년대 첫사랑의 기억.
- 흥행을 예상했나?
▲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다. '화차'도 있고, '시체가 돌아왔다', '타이탄'도 다 개봉을 할 예정이라 아직 모르겠다. 많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 사실 오래된 장르인데, 오히려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 그 만큼 요즘 영화 장르가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제작이 늦게 된 것도 있고.
- 감정 표현이 담백하다. 이번 영화를 위한 스타일인가, 아니면 본인의 취향인가?
▲ 내 원래 취향인 것 같다. 과장된 영화를 안 좋아한다. 오글거리는 거 싫어하고. 장르 영화들의 극단적인 설정, 극단적인 감정을 잘 이해 못 한다.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첫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그것 자체가 판타지니까, 그 다음부터는 일상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진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실제로 여성관객들은 수지 캐릭터에 많이 감정 이입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남성들은 전부 과거 승민(이제훈)을 자신과 비슷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남자들이 영화에 더 감정이입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아무래도 내가 남자니까. 여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특히 수지의 성과는 놀랍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 수지한테 매달렸다.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데 과연 (수지네) 회사에서 봐 줄까, 란 생각이 들었는데, 흔쾌히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결정해 주시더라. (수지가 출연한 드라마 '드림하이'를 봤나?) 나중에 수지가 나오는 부분만 살짝 돌려본 정도. '드림하이'를 보면서 우리 영화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수지를 직접 만나보고 확신이 들었다. 한가인과 닮았나, 안 닮았나 이런 말도 있었는데 싱크로율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닮은 사람인가의 의미가 뭐가 있나. 어차피 다른 사람인데.
- 배우로서 수지의 재발견이란 호평이 많다. 감독으로서 기쁜가?
▲ (고개를 끄덕끄덕) 가장 기쁘다. 영화의 흥행보다 더 기쁘다. 같이 뭔가 해냈구나란 생각이 든다. 감독으로서 정말 뿌듯하다. 창피하지 않다. 배우들이나 감독들,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과연 스스로 잘 하고 있는 지 모른다. 영화가 나오면 최종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다. 수지도 가인이도 태웅이도 제훈이도 납뜩이 정석이도 불안감을 가지면서 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으니 그게 가장 뿌듯한 거다.
- 영화 속 자신이 직접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
▲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없다. 물론 누구를 짝사랑한 적은 있지만, 승민(이제훈)처럼 찌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남 선배(유연석) 같은 점도 없고. 하지만 승민이나, 강남선배, 납뜩이(조정석) 세 인물의 면모가 조금씩 다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승민의 감정은 내가 아는 감정이고. 어렸을 때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고백하거나 좋아하는 표시를 할 때의 두근두근거림. 서툴고 설레고. 그런 믿음을 갖고 이 시나리오를 쓴거다.
- 영화 속 'GUESS' 티셔츠 같은 에피소드는 실제 감독이나 가까운 누군가가 겪은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그냥 티셔츠를 입고 있다, 정도였다. 'GUESS' 로고를 보고서는 '짝퉁 아이디어' 어떨까, 하고 콘티에 그렇게 적용됐다. 내가 나이키의 짝퉁 나이스가 있던 세대니까. 엄마한테 '메이커 사달라'고 하다가 혼나고 한 경험이 있고.
- 출연 배우들과 꾸준히 잘 지내는 편인가?
▲ '불신지옥'의 (남)상미도 꾸준히 연락하는 편이고, (심)은경이도 항상 작품 선택을 할 때 함께 고민하고 종종 식사도 하고 그런다. 은경이나 수지는 조카나 딸 같다. 아무래도 가인 씨 같은 경우는 유부녀이기도 하고, 여배우에게 지켜야 할 선이 엄격하다면 은경이나 수지는 내가 뭐라도 해줬으면 좋을 것 같은, 조카같은 마음이 있다.
- 영화에서 승민의 친구 납뜩이(조정석)가 없었다면 밍밍했을 것이란 반응도 많다.
▲ 당연하다. 납뜩이가 없었으면 당연히 재미없었을 것이다. 조정석은 영화의 희극적인 인물이기에 초고에서부터 중요했고, 오디션을 많이 봤다. 실제로 조정석이 웃기진 않은데 배우로서 넓은 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나오면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화는 사랑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 보다는 총체적인 것이 아닌가. 시절에 대한 그리움. 돌이킬 수 없는 현재.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과장하지 않으며 아는 척하지 않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남자는 첫사랑을 못잊는다'라는 말도 떠오르게 한다.
▲ 못 있는다기 보다는, 첫사랑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시절에 대한 나르시즘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시절. 누구나 돌이켜보면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 거기에 첫사랑도 있고 납뜩이 같은 시절도 있지 않겠나. 납뜩이가 현재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아 옛날에 정말 친했는데 요즘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납뜩이 같은 친구가 갑자기 현재 연락하면 되게 반갑지 않을까.
- '건축학개론'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2003년에 초고를 쓰고 무수히 바뀌고 또 바뀌고 엎어지고, 아이러니하게 명필름을 만나서 고치면서 가장 초고랑 비슷해졌는데, 심 대표님 말처럼 운명의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명필름에서 못 하면 진짜 못 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한 거다. 대표님이 술 한잔 먹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공감이 돼서 눈물이 맺혔다고 하시더라. 나는 재미있는데 남은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물음으로 이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었다. 내겐 시험문제 같은 책이었는데, 확신을 갖게 돼 기쁘다. 이제 내가 남을 설득할 수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든다. 그게 궁금해서 못 놓았던 것도 있다. 내가 틀렸는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 영화 속 승민(엄태웅)이 지어준 서연(한가인)의 제주도 집은 어떻게 됐나?
▲ 원래 그 곳은 정말 집이었고, 거기에 공사를 덧붙여 세트를 지었는데, 제작사에서 집으로 지어 시나리오 작업실로 쓴다고 하더라. 영화 속 모습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비슷할 것이다. 사실 욕심대로라면 영화 속 집을 더 예쁘게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는 거니까 안 됐다.
- 차기작으로 구상하는 작품이 있나?  
▲ 뭔가가 땡기는 것이 중요하다. 시나리오를 쓰고 만드는데 2, 3년이 걸리는 것은 동기 부여와 지구력이 요한다. 마치 남자 여자 관계처럼 말이다. 일단 '뿅' 가야 집 앞에서 밤도 새고 그러지 않나. 이런 (시나리오) 작업을 하려면 우선 남녀 관계처럼 처음에 반해야 하는데, 반할 아이템을 아직 못 만났다. 하고 싶어 미칠것 같은 작품을 만나야지.
- 요즘은 각색도 많이 한다. 그런 욕구를 느낀 작품은 없나?
▲  딱 한 작품 있다. '화차'였다(변영주 감독과 이용주 감독은 절친이기도 하다). 
nyc@osen.co.kr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