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8월 15일생.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천재가 만 42세의 나이로 유니폼을 벗기로 결정했다. KIA 타이거즈 외야수 이종범은 31일 광주구장에서 선동렬(49) 감독과 면담을 가진 뒤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993년 데뷔해 정확히 20시즌째를 앞두고 이종범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기량이 점점 하락곡선을 그리는 노장 선수들은 은퇴야 현역 연장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몇몇은 높은곳에 머물 때 은퇴를 결정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KIA 선동렬 감독을 들 수 있다. 선 감독은 주니치 시절인 1999년, 팀내 입지가 좁아지자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수들은 최대한 오래 선수생활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들은 거의 모두 그랬다. 송진우가 그랬고, 김용수가 그랬으며 양준혁도 마찬가지였다. 이종범도 선수생활 연장에 커다란 의지를 갖고 있었다.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예로운 은퇴가 무엇인가. 전성기는 언젠가는 끝난다. 헨더슨은 연봉 몇십만 달러만 받고도 뛰는데 난 이게 멋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로 이종범의 속내를 짐작하는게 충분히 가능하다.

이종범은 현역 최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자기관리의 힘으로 팀 내에서 백업 외야수로 제 몫을 충분히 해 내고 있었다. 시즌을 준비하며 시범경기서도 좋은 타격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플레잉코치 제안이 들어오자 이종범은 더 이상 1군에서 선수로 기회가 없겠다는 걸 느꼈고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마침 이날 오전엔 메이저리그에서 놀랄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현역 최고령 메이저리거인 제이미 모이어(50)가 콜로라도 로키스 개막 2선발로 결정됐다는 소식이었다. 198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모이어는 필라델피아 소속이던 지난 2010년 왼쪽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주위에선 당시 48세였던 모이어의 은퇴를 기정 사실화했지만 그는 1년 2개월의 재활을 거쳐 콜로라도 로키스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고 다시 빅리그에 도전했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모이어의 최대구속은 82마일(시속 132km). 그렇지만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들이 갖지 못한 관록이 그에게 있었고 4차례 선발 등판서 2승 평균자책점 2.77을 거두며 2선발 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다. 이종범과 함께 '타이거즈 왕조'를 이끌었던 LG 이대진은 이종범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를 통해 "한국나이 51살인 모이어는 2선발로 확정됐다. 종범형, 아직 충분히 할 수 있는데..."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모이어와 비슷한 선수가 있으니 바로 구도 기미야스(49)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은 구도는 2010년까지 현역 선수로 뛰었다. 구도는 29시즌을 선수로 뛰며 자기관리의 표준을 제시하며 선수생활 연장 의지를 불태웠으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감독 겸 선수를 요구하다 협상이 틀어지자 결국 지난해 12월 은퇴를 선언했다.
구도는 한국 선수와도 인연이 깊다. 1999년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당시 구도는 1선발로 우승에 기여했다. 이때 상대팀이 바로 선동렬-이종범이 있던 주니치 드래건스였다. 또한 2006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이승엽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아직 우리나라엔 이들과 같이 긴 시간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간 사례가 나오지 않고있다. 그 길을 걷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던 이종범도 팀 사정으로 결국 유니폼을 벗게 됐다. 참고로 모이어는 1962년생, 구도는 1963년생으로 1963년 1월생인 KIA 선동렬 감독과 나이가 같다. 선 감독은 구도와 동갑내기지만 생일이 빨라 1962년생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종범의 은퇴 소식에 모이어와 구도가 더욱 생각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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