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에 도전하고 싶다".
97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종범에게 한국무대는 좁았다. 데뷔 이후 5년 동안 평균 3할3푼1리, 713안타, 106홈런, 310도루를 했다. 해태를 세 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팬들은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그는 일본진출을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겨우 5년 밖에 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IMF가 천운으로 작용했다. IMF 사태로 해태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야구단 재정에도 깊은 주름살이 생겼다. 사실상 재정조달이 어려웠고 매각설에 휘말렸다.

당장 돈이 필요한 구단에게 주니치 선동렬의 임대료만으로는 버거웠다. 그래서 이종범의 해외진출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종범의 해외진출 의사를 확인한 구단은 언론을 통해 이종범이 직접 해외진출 하고 싶다는 말을 하도록 했다. 이종범의 발언은 이슈화가 됐고 이종범의 해외행은 일사천리로 추진되게 되었다.
선동렬을 보유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이 한일 프로야구 친선경기차 한국을 찾았고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 일본 언론도 "한국의 이치로가 일본에 진출한다"면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구단은 주니치와 협상창구를 개설했고 이종범은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0만 엔의 조건에 입단 계약서에 사인했다. 구단은 이종범을 내주고 4억5000만 엔의 이적금을 챙겼다. 이종범은 자신의 계약조건에 관련해 아무런 주장도 못했다. 그저 책정된 금액을 받았다. 이유는 "욕심부리다 그토록 가고 싶은 일본에 못갈까봐 걱정했다"는 것이었다.
이종범은 일본에서 커다란 두 개의 사건을 접했다. 빠른발과 빠른 스윙으로 주루와 타격은 인정을 받았다. 실제로 '바람의 아들, 잠든 용을 깨워라'는 플래카드가 걸릴 정도로 주루플레리를 인정 받았다. 시범경기에서 만루홈런도 치면서 톱타자로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개막후에도 주니치 타선의 첨병이었고 존재감 있는 활약을 펼치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첫 해 6월 한신과의 경기에서 가와지리의 몸쪽 역회전볼에 무의식적으로 스윙을 하다 오른쪽 팔꿈치를 정통으로 맞았다. 골절상을 입었고 사실상 시즌을 마감했다. 일본투수들의 볼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종범은 급한 마음에 팔꿈치가 완전하지 않는 가운데 조기 복귀를 했지만 적응에 실패했다. "그때 차라리 시즌을 푹 쉬고 다음 시즌을 준비했었으면 나았을 것이다"고 회고했다.
또 하나는 포지션 문제였다. 그는 해태에서는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5년동안 부동의 유격수였다. 그러나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의 수비 가운데 포구와 송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이드 스로우를 못하는 이종범에게 아쉬움을 나타냈고 결국 호시노 감독은 부상에서 돌아오자 외야수로 전향을 지시했다. 이종범의 유격수 자리는 후쿠도메 고스케가 차지했다. 타순도 톱타자에서 2번타자로 바뀌었다. 스스로 도루를 할 수 있는 그린라이트도 없었다. 포지션과 타순 변경에 자신의 존재감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위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종범의 수비는 한국에서도 지적이 있었다. 플레이는 화려하지만 송구가 문제가 있었다. 이종범의 강한 송구에 따른 자연 변화구가 되는 바람에 1루수들이 힘겨워했다. 실책수도 많았다. 이종범은 "실책은 분명히 많았는데 숨은 이유가 있었다. 수비범위가 넓다보니 쫓아가지 않아도 될 볼을 잡아서 던지다 보니 악송구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볼쪽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여버리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응룡 감독은 "이종범은 송구나 포구가 안좋아도 워낙 수비범위가 넒어 유격수로 장점이 많다. 이종범은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뛰어 놀도록 풀어주어야 한다. 종범이의 성겨상 이것 저것 제동을 걸고 묶어놓으면 안된다. 특히 포지션을 바꾼게 결과적으로 이종범이 일본에서 부진하게 된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종범은 부상에서 복귀하고 2000년까지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99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개인 성적표는 부진했다.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고 주니치 생활을 힘겨워했다. 원형탈모증이 생길 정도로 지옥이었다. 2001년 시범경기 도중 2군행을 통보받았고 구단에 퇴단의사를 밝히고 6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4년 동안 타율 2할6푼1리, 286안타, 27홈런, 53도루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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