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이대호 취재기] 다르빗슈와 어깨 나란히 한 한국인, 이호승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4.04 06: 53

'Unsung her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산소탱크' 박지성(31)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다. 그렇지만 '소리없는 영웅'이라는 말은 이젠 박지성에겐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최고의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알렸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에는 정말로 '소리없는 영웅'이 한 명 있다. 주인공은 바로 골키퍼 이호승(23)이다. 이호승은 지난해 초 J2리그에 속해있던 콘사돌레 삿포로에 입단했다. 원래는 주전 골키퍼 다카기 다카히로의 백업으로 입단한 이호승이었지만 다카기가 개막 직후 부상을 당하며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한 시즌만 뛰기로 계약했던 이호승이지만 모두 36경기에 출전, 30실점으로 경기당 0점대 방어율(0.83골)을 기록했다. 이호승이 깜짝 활약을 펼친 덕분에 삿포로는 4년 만에 J1리그에 승격되는 기쁨을 맛봤다.

이대호가 출전한 니혼햄과 오릭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지난 3일 찾은 삿포로 돔 내부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관중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공간의 벽에는 선수들의 사진과 함께 사인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삿포로 돔 MVP'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삿포로는 한국에서 날아온 귀인에 2011년 '삿포로 돔 MVP'의 영예를 선사해 활약에 보답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삿포로 돔 MVP는 축구 부문과 야구 부문으로 나눠 삿포로를 연고로 한 프로구단 선수 가운데 매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수여된다. 상금은 100만 엔(한화 약 1400만원)으로 삿포로 시에서 선정하는 '시즌 MVP'와 다를 바 없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 이호승의 삿포로 돔 MVP 수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호승 본인이 수상 소식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삿포로 구단 홈페이지 프로필에서 좌우명을 적는 곳에 이호승은 '자랑하지 말라'고 적어놓을 정도로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수다. 그렇지만 삿포로 돔은 역대 수상자 명단을 관중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1층 서쪽 출입문 통로에 명패로 비치, 마치 명예의 전당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배치했다. 
 
지난해 축구 부문 MVP는 이호승이었고 야구 부문 MVP는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뛰었던 다르빗슈 유가 선정됐다. 5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니혼햄을 넘어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였던 다르빗슈는 결국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 텍사스 레인저스와 6년간 60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맺었다.
누구나 알아보는 대형 스타와 J2리그에서 뛴 이방인. 그렇지만 이호승은 당당히 '2011년 삿포로 돔 MVP'로 선정돼 다르빗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소한 삿포로에선 이호승은 다르빗슈에 부족할 건 없었다.
삿포로 돔 구장 관리를 맡고 있는 사나다 미쓰나리 씨는 "만약 이호승이 없었다면 삿포로 구단은 올해도 J2리그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다르빗슈가 니혼햄을 받치는 기둥이었다면, 이호승은 콘사돌레의 대들보였다. 그렇게 보면 작년에는 둘 다 똑같이 위대했다"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이호승은 이역만리에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J1리그에 승격한 이호승은 여전히 주전 수문장 자리를 붙잡고 있다. 비록 18개 구단 가운데 17위에 머물고 있지만 이호승은 국가대표 골키퍼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몸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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