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 지 잘 알고 그렇게 뛰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팀워크다”.
2000년대 말 가을 잔치서 접전을 벌였던 상대는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며 올 시즌에도 포스트시즌 컨텐더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한때 라이벌 팀은 지난해 가을잔치 초대 좌절을 맛보며 권토중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가운데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상대팀의 기사를 구단 내 라커룸 방면에 게시해 선수들이 스스로 깨닫길 바랐다. 감독으로서 첫 시즌 개막을 앞둔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
2012 시범경기 전적 4승 4무 5패로 공동 5위를 기록한 두산은 7일 넥센과의 개막전을 앞두고 전략 세밀화 및 선수들의 기량 상향 평준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일 잠실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는 5회와 7회, 9회에 각각 무사 1,2루, 무사 1,3루, 무사 2,3루로 이닝을 시작하며 야수들의 작전 구사 능력과 투수들의 위기 관리 능력을 살피기도 했다.

경기 후 선수단 단체 미팅과 개막 엔트리 확정 등으로 인해 긴 시간 고민을 거듭했던 김 감독은 자신이 바라는 팀워크에 대해 “그저 선수들이 ‘하나가 되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대신 선수 개개인의 책임감과 의무를 강조해왔다.
“가장 바람직한 팀워크는 무엇일까. 선수 개개인이 자신이 어떤 순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파악하고 그에 따라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1번 타자는 1번 타자답게, 선발 투수는 선발 투수답게, 대주자, 대수비 요원은 대주자, 대수비 요원답게 자신이 해야 하는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모습. 그 모습이 전체적으로 잘 이뤄져야 진정한 팀워크가 구축될 수 있다”. 1번 타자가 간결한 타격이 필요한 순간 4번 타자처럼 거포 스윙을 하거나 위기 순간 타자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격다짐식 투구를 고수하는 등 공명심에서 비롯되거나 유연하지 못한 사고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모 야구 관계자 및 해설위원들은 두산 몇몇 타자들에 대해 “때로는 볼카운트나 아웃카운트, 누상의 주자를 생각지 않는 스윙을 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꼬집기도 했다. 4일 자체 청백전 3회말 백팀의 선두타자로 나선 정수빈은 청팀 선발 이용찬을 상대하다 볼카운트 2-2에서 바깥쪽 높은 직구 유인구에 큰 스윙으로 헛스윙 삼진 당하고 말았다. 비록 청백전이었으나 선두타자로서 출루를 노리는 신중하고도 간결한 타격으로 공격 물꼬를 틔워야 하는 선수였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스윙이었다.
김 감독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두산 라커룸 내 웨이트트레이닝실 쪽 게시판에 스크랩된 SK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지난해까지 두산에서 뛰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은 유재웅의 인터뷰 기사였다.
유재웅은 새 소속팀에 대해 “정말 야구를 잘 알고 하는 선수들이 많다. 수비나 공격 때 집중력도 뛰어나다. 진루타를 쳐야할 때와 풀 스윙을 할 때를 알고 플레이한다. 몇 년 간 계속 큰 경기를 치렀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경험이 쌓여 선수들도 성장한 것 같다”라며 “내가 이 팀에서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최고의 스페어타이어가 되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새 팀에서 주전 자리를 노리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보직을 알고 그에 따라 자신을 특화시키겠다는 말이다.
그와 관련해 김 감독은 “상대팀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수용하고 우리의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며 “상황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생각하고 파악해 나서는 모습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고영민과의 문답을 공개하며 이렇게 밝혔다.
“영민이에게 ‘무사 만루 찬스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 지 구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라고 답하더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전진 수비를 펼친 상대 시프트를 읽고 이 상황에서 득점타만이 아닌 추가 찬스 양산을 위해 어떻게 쳐야 하는 지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상대 내야 시프트를 절반으로 나누어 보는 등 시점의 변화를 두면 그 시프트에서도 상대 수비진의 사각이 보인다”.
팀 득점 및 진루타를 위한 유연한 사고방식의 필요성. 유재웅이 언급한 SK 선수들의 장점과도 맥이 맞닿았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는 등 이기는 데 익숙했던 SK 선수들 중에는 누가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 잘 알고 뛰는 이들이 많다. 아무리 최고의 명장이 지휘봉을 잡았더라도 용맹하고 영리한 병사가 없다면 그 팀은 강팀이 될 수 없다.
지난 5년 간 두 번의 한국시리즈 패퇴와 한 번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겪게 했던 팀. 그러나 그들의 장점을 수용하고 자신의 장점으로 2차 발전, 특화시키지 못한다면 이기기 힘들다. 두산 라커룸에 SK 기사가 게시된 데 대한 의미. 김 감독은 그 뜻을 선수들이 가장 잘 알아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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