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전 역전승이 없었더라면 이번 플레이오프가 아마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곽승석이 부상으로 갑작스레 빠지며 선수들이 모두 흔들렸을 때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준 김학민의 활약이 컸다”.
대한항공이 ‘난적’ 현대캐피탈을 꺾고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올 시즌 정규리그서 5승1패라는 압도적인 상대전적을 기록했기에 이변이 없는 한 대한항공의 챔프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이번 PO 시리즈는 그야말로 ‘고투’였다.
가장 큰 그 주인공은 역시 어깨 부상의 고통을 참고 마지막 3차전에서 36점을 기록하며 팀에 승리를 안긴 마틴이었다. 그러나 배구계 관계자들은 레프트 김학민의 묵묵한 활약이 없었다면 대한항공의 챔프행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난조 속에 1, 2세트를 모두 내주며 패색이 짙던 경기를 3-2로 뒤집은 1차전 승리는 대한항공이 현대캐피탈을 물리치는 데 발판이 됐다. 당시 대한항공은 ‘디펜스의 핵’ 곽승석이 갑작스런 발목 부상으로 빠졌고, 이것이 심리적인 위축을 부르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학민만은 달랐다. 그는 1차전서 자신이 기록한 25점 가운데 24점을 공격포인트로 기록하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대한항공이 1, 2세트를 모두 내주면서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계속 추격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김학민의 활약 덕분이었다. 비록 팀이 완패하며 빛이 바랬지만 2차전 역시 김학민은 팀 내 가장 많은 17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3차전,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했던 김학민은 결국 힘에 부친 모습을 드러내며 PO 3경기 가장 낮은 46.51%의 공격성공률에 그쳤다. 21점이라는 적지 않은 포인트를 올렸지만 지난 1, 2차전 홀로 분투한 그의 모습은 36점을 올린 마틴의 활약에 묻혔다.
물론 김학민은 3차전이 끝난 뒤 “누가 더 잘했는가를 떠나 자신이 속한 대한항공이라는 팀이 힘든 여정을 뚫고 다시 한 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팀의 결승 진출을 기뻐했다. 오히려 그는 “가장 중요한 3차전에서 팀에 제대로 힘이 되지 못해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3차전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책과 팀과 동료를 생각하는 진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제 마지막 챔피언결정전만을 앞두고 삼성화재를 다시 만나게 된 신영철 감독이 자신들의 가진 강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조직력’을 꼽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플레이의 측면에서 조직력을 넘어 선수들 모두가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정신적인 조직력’이야말로 역사상 처음으로 V리그 우승을 노리는 대한항공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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