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이대호는 팀의 상징과도 같았다. 팀 내 누구보다 굳건한 입지를 자랑했기에 몇 경기에서 부진했다 하더라도 조급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조금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도 언젠가는 제 궤도를 찾아 갈 것이라는 이대호에 대한 믿음이 팀 내엔 항상 있었고, 이대호 역시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이대호는 오릭스 구단에서 팀 성적을 내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들여온 외국인 선수다. 바다를 건너온 선수에게 개막전부터 4번 타자 자리를 맡긴다는 건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이야기지만 선수에게 큰 책임감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니혼햄과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이대호는 3타수 무안타 1볼넷에 그치며 타율 2할8푼1리(23타수 6안타)가 됐다. 또한 팀은 1-3으로 패하며 시즌 전적 2승 4패가 됐다.
이날 오릭스 타선은 니혼햄 투수들에 전반적으로 고전했다. 그 탓에 이대호는 4번의 타석 가운데 3번은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그나마 1-2로 뒤지던 6회엔 2사 2루 기회를 잡았지만 니혼햄 선발 브라이언 울프는 고의4구에 가까울 정도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멀리 벗어난 공을 던져 볼넷에 만족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대호에게 한국과 일본의 4번 타자 자리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이대호는 "둘 다 찬스에서 한 방을 날려줘 승리를 가져오기를 염원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볼때 4번 자리는 그만큼 타자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전제하고는 "여기서 난 용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기대하는 게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이겨내야 할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롯데에서는 이대호가 잠시 주춤한다 해도 믿고 기다려 줬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칫 조급해 질 수 있다. 이대호는 "욕심을 버려야 겠다"라는 말로 앞선 타석들을 돌이켰다.
이날도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앞에 주자가 없으니까 (큰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스윙이 커졌다. 9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주자가 없길래 나와 승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유인구에 볼로 승부를 하더라. 스윙이 커져서 결국 내 타격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큰 타구는 치려고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대호 역시 "홈런은 억지로 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타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직 일본에서 장타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이대호는 절대 조급해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3안타를 쳤던 4일 경기 후 이대호는 "아직도 공이 뜨고 있지 않다"며 "결과가 좋게 나왔지만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안타를 기록하지 못한 5일 경기가 끝난 뒤에는 "이제 공이 뜬다. 서서히 밸런스가 맞아가고 있다"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이날 이대호는 첫 타석에서 큼지막한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는데 정규시즌에서 나온 이대호의 가장 큰 타구였다. 시즌 초반에는 당장에 나타난 결과보다는 타격 밸런스를 잡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게 이대호의 생각이다.
이대호는 시즌을 시작한 뒤 불과 6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이대호의 성패를 점치는 건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이대호가 경계해야 할 것은 '큰 것을 쳐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타격 밸런스 찾기에 여념이 없는 이대호가 오사카 홈 팬들 앞에서 주말 3연전동안 시원한 타격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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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돔(일본)=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