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속" 등 '레전드' 이종범이 남긴 바람의 어록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2.04.06 11: 16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2)이 지난 5일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이제는 프로야구 전설로 돌아갔다. 그는 프로야구 19년 동안 한국과 일본야구를 누비면서 수많은 전설을 만들었다. 특히 기록 뿐만 아니다. 그는 탁월한 언변으로 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의 어록으로 야구인생을 짚어본다.
■기자님들, 기사 바꾸게 해서 미안하요!(96년 9회 역전 만루홈런 직후)

지난 96년은 아무도 이종범을 막지 못했던 전성기 시절이었다. 그는 8월 23일 대전 한화전에서 4-1로 지던 9회초 2사 만루에서 정민철을 상대로 우월 만루홈런을 터트려 경기를 역전시켰다. 그리고는 9회말 포수로 깜짝 변신해 소방수 임창용의 볼을 받아내며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역전승을 장식했다. 한화가 다 이기는 줄 알고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들은 마감에 쫓기며 기사를 완전히 바꾸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는 대전 기자실에 들러 "기자님들, 기사 바꾸게 해서 미안허요"라고 미안해했다.
■기회가 된다면 뛰고 싶다(97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이종범은 97년까지 5년 동안 한국야구를 지배했다. "어휴, 재를 어떻게 막아요. 걸리면 뛰고 승부하면 안타를 때리니"라면서 타구단 코치들이 포기할 정도였다. 홈런을 곁들인 안타, 나가면 자동으로 도루하는 통에 상대 배터리에게는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다. 때문에 이종범에게 한국 야구는 좁았고 실제로  '한국의 이치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서 뛰고 싶다"고 사실상 일본진출을 선언한다. 운영자금이 급했던 구단의 적극적이 지원에 힘입어 주니치에 입단했다. 5년만에 해외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입단 조건은 계약금 5000만엔, 연봉 8000만엔이었다.
■내 속이 바로 그 홍어속이요(2001년 주니치 퇴단 인터뷰 중)
이종범에게 일본은 시련이었다. 첫 해는 잘나갔다. 바람 처럼 나고야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러나 6월 한신 가와지리의 몸쪽 볼에 팔꿈치를 맞고 골절상을 입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호시노 감독과의 마찰도 한몫했다. 결국 이종범다운 야구를 못하면서 3년이 지나갔다. 4년째에는 시범경기부터 2군행 지시를 받았고 결국 시즌 도중 구단에게 퇴단의사를 밝혔다. 나고야 시내의 국제호텔에서 가진 퇴단인터뷰중 "혹시 홍어 아요? 내 속이 바로 그 홍어속이요"라면서 자신의 삭힌 마음을 표현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게 자랑스럽다(2006년 WBC 본선 3차전 일본전 승리 이후)
시련을 보냈기에 이종범은 일본에게는 마음의 응어리를 갖고 있었다. 기회는 2006년 제 1회 WBC 대회였다. 한국대표의 주장으로 나선 이종범은 선수단을 잘 이끌고 4강의 기적을 연출했다. 특히 자신도 3월16일 미 본토에서 열린 본선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2타점 좌중간 2루타를 터트려 2-1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는 "일본을 꼭 이기고 싶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느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감명을 받은 정몽구 구단주는 귀국하자 이종범을 불러 2억 원을 안겨주었다.
■박수칠 때 야구 해야지, 왜 떠나나(2011년 8월 언론 인터뷰 중)
이종범은 2007년 은퇴위기를 겪었다.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2006년 2할4푼2리로 떨어지더니 2007년은 1할7푼4리의 부진이었다. 시즌 도중 2군에 강등되는 수모도 겪었다. 팀은 3년새 두 번이나 최하위의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의 부임과 함께 기회를 부여받았고 다시 주축선수로 활약했고 2009년 통산 10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마흔이 넘는 나이 때문에 은퇴의 그림자는 항상 따라붙었다. 그는 그때마다 "박수칠 때 야구 해야지 왜 떠나는가"라면서 현역 생활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야구를 버리지 않겠다(2012년 4월 은퇴선언 직후)
이종범은 2012시즌 4월 개막을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선동렬 감독에게서 엔트리 제외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유를 듣고 곧바로 은퇴를 결정했다. 시즌 내내 1군과 2군을 오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 그만 두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진로도 관심을 받았다. 그는 "절대 야구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면서 야구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야구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해외 코치연수, 야구해설 등 여러가지 진로가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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