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판 후 피로도가 큰 보직이니까요. 나머지 나흘을 제 스스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데뷔 10년차 만에 처음으로 선발 보직으로 내정되어 비시즌을 보냈다. 중간 계투로 좋은 활약을 보였을 때는 150km대 광속구를 던지고도 팀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라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입대 시기 조정이 늦어지면서 다소 늦은 시기에 병역 의무를 해결해야 했다. 지난 9시즌 동안 운이 없던 케이스의 우완 김승회(31. 두산 베어스)가 뒤늦게 ‘운수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2003년 제주 탐라대를 졸업하고 2차 5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김승회는 2006시즌 롱릴리프 및 셋업맨으로 61경기 6승 5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95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김승회는 별다른 변화구를 갖추지 못한 대신 150km의 직구를 앞세운 투구로 이재우, 이재영(SK) 등이 빠진 두산 계투진을 지켰으나 주포 김동주의 어깨 부상 여파로 팀 전력이 약화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2007시즌 후 공익근무로 병역의무를 해결한 김승회는 한 시즌 반 가량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직구 위주 투구를 펼치던 투수가 입대 이전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며 과도기를 겪었던 이유가 컸다. 그러나 김승회는 2011시즌 중반부터 선발로 가능성을 비추며 24경기 3승 3패 평균자책점 4.68의 성적을 남겼다. 시즌 전체 성적은 아쉬웠으나 SK를 상대로 6⅓이닝 무실점 선발승을 거두는 등 선발로서 경기 내용 면에서는 가능성을 충분히 남긴 한 해였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김진욱 전 1군 불펜코치가 자리한 것은 어떻게보면 김승회에게 기회와 다름없다. 평소 착한 성품을 갖췄고 성실한 훈련 태도를 보여줬으나 소극적인 마인드로 일관한 데 대해 안타까워하던 지도자가 그에게 자신감이라는 입김을 불어 넣어줬기 때문이다. 전지훈련 기간 잠시 어깨 통증으로 인해 고생했던 김승회는 이제 건강한 몸으로 팀의 5선발로서 야구 인생의 새 전환점을 기대하고 있다.
“어깨 상태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선발로 첫 시즌을 맞는 데 대한 동기 부여도 많이 되었고요. 다만 선발로 나서는 만큼 한 경기서 던져야 하는 공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한 경기를 어떻게 던지느냐를 넘어 다음 등판을 기다리는 4일 동안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상무, 경찰청 복무가 아니었던 만큼 지난 2시즌 동안 김승회는 투구감을 잡는 데도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40km대 초반에 그치던 직구 평균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슬라이더, 포크볼 등 변화구로 완급조절투를 펼치는 데도 경기 경험을 통해 새롭게 투구를 정립하고자 했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것에는 아직 조금 못 미치지만. 예전처럼 150km대 빠른 직구가 나오지 않더라도 지난해 제가 변화구를 던졌을 때 타자들이 쉽게 공략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동기 부여가 되었고 자신감도 많이 붙었습니다”. 이전까지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던 김승회는 어느덧 자신감 넘치는 투수로 변모했다.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서 김승회는 선발로서 “3점대 평균자책점과 10승 이상”을 자신이 바라는 성적으로 이야기했던 바 있다. 아직 그 목표가 유효한지 묻자 김승회는 수줍게 웃었다.
“그 성적이 나온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바람일 뿐이에요. 일단 선발 등판 경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다음 등판까지 몸을 잘 관리하면서 부상 없는 한 시즌을 보내고 싶습니다. 마운드에 올라 팀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제가 해야 할 당연한 도리고. 부상없이 선발로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한 시즌을 보낸다면 미국에서 말씀드린 목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해 무실점 선발승을 거둔 후 김승회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관중석에서 자신의 모습을 눈물흘리며 지켜본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이야기했던 바 있다. 동료들 또한 착한 성품을 지닌 김승회의 선발승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그 날 이후 두산의 팀 분위기도 무형적으로 더욱 돈독해졌다. 프로 10년차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기회를 얻은 김승회는 2012시즌 ‘화려한 인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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