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0일 광주구장.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화요일 경기는 평일인데도 구름 관중이 몰려 들었습니다. 이종범(42)과 이승엽(36)이 타석에 나서자 팬들의 열기는 더 한층 뜨거웠습니다.
1993년 건국대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종범은 첫 해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했고 95년 경북고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이듬 해부터 뛰어난 파워 배팅으로 6년 선배 이종범과 경쟁을 펼칩니다.
1996년까지는 이종범이 타율과 홈런에서 앞섰다가 97년에는 홈런 더비에서 이승엽이 1위(32개)에 오르고 이종범은 2위(30개), 최다안타 부문은 이승엽이 1위(170개), 이종범이 2위(157개), 타율은 이승엽이 2위(3할2푼9리), 이종범이 6위(3할2푼4리)를 기록합니다.

이승엽은 이 해 정규 리그 MVP에 선정되고 이종범은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의 9번째 우승의 주역으로 최우수선수상(MVP)를 차지하고 해태 그룹의 재정난 때문에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떠납니다. 해태는 이종범의 이적료로 98년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기록상 구단의 흑자(3억원)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종범은 주니치에서 일본투수들의 집요한 빈볼로 팔꿈치 골절 등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고 2001년 해태의 후신인 KIA로 복귀합니다. 고향팀으로 돌아와서도 몸에 맞는 볼로 얼굴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고 한동안 부진했으나 재기해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선발돼 이승엽과 함께 뛰며 선후배간의 친분을 쌓았습니다.
야구팬들은 ‘야구 천재’ 이종범과 ‘아시아의 거포’ 이승엽의 대결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고 이날 관심있게 양팀의 경기, 두 사람의 출장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본 것입니다.
=2012년 4월 17일 목동구장. KIA와 넥센 히어로즈전은 화요일 경기임에도 거의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이종범과 김병현(33)의 대결이 벌어지기 때문에 입장객이 가장 적은 목동경기장에 많은 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이 국내 경기에서 함께 뛴 적은 없었으나 팬들은 광주제일고 9년 선후배 사이로 한국시리즈 우승 4차례의 이종범과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2개 따낸 김병현이 한 경기장에서 만나는 모습에 눈길이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종범이 형은 나의 우상이었습니다.”고 국내 복귀 후 털어놓은 김병현은 이날 이종범을 상대로 사정없이 예리한 변화구로 공략했습니다.

=2012년 4월 25일 광주구장. 한화 이글스와 KIA전은 박찬호(39)가 선발로 예고되자 역시 평일임에도 만원사례 소동이 빚어졌습니다.
박찬호와 이종범은 우리나라가 IMF 위기를 맞은 1997년 미국과 국내에서 출중한 활약을 펼쳐 시름에 잠긴 국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 94년에 입단해 이 해부터 선발 고정 멤버로 자리잡아 강속구를 시원하게 뿌렸고 이종범은 몰락하는 모기업 해태에게 기적적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했습니다.
2006년 제1회 WBC 예선 때 함께 대표팀 멤버로 뛰면서 주장을 맡은 이종범은 선수단을 이끌고 4강의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그 자신도 3월16일 미국에서 열린 본선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2타점 좌중간 2루타를 터트려 2-1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고 "일본을 꼭 이기고 싶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박찬호는 이치로가 “한국이 앞으로 30년동안 일본 야구를 이길 수 없게 만들겠다.”고 다짐한 가운데 도코돔에서 열린 일본전에 마무리 투수로 나서 이치로를 평범한 플라이로 물러나게 해 ‘이치로 망언’을 무색케 만들었습니다.
한국야구 한 시대를 꽃핀 이종범과 박찬호의 대결은 야구팬 뿐아니라 전국민의 주목을 받을만한 야구사에 남을 한 장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 예상은 이종범이 갑자기 지난 3월 31일 은퇴를 선언하고 4월 5일 은퇴 기자회견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는 “나는 행복한 선수였다.”고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회고했지만 팬들과 야구인 대부분은 그가 돌아온 해외파 선수들과 적어도 올해 맞대결을 벌이는 명장면을 남겨주기를 기대해 아쉬움이 큽니다.
이승엽이 "아직도 종범이 형이 은퇴하셨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다. 시범경기가 은퇴경기가 되다니…"라며 말끝을 잇지 못한 것에 모두가 공감합니다.
출범 31년째의 프로야구는 각가지 호재로 정규 시즌 관중 7백만명을 기대하면서 7일 개막됩니다. 이종범의 전격 은퇴가 혹시라도 야구 흥행에 좋지 않은 영행을 끼치는 게 아닌 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으로 씁쓸함을 달래보겠습니다.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