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했던 기억이 나네요. 팬들이 재밌어하면 좋겠네요".
오릭스 버펄로스와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경기를 앞둔 7일 오사카 교세라 돔 오사카(이하 교세라 돔). 오릭스 구단 관계자가 취재진들에게 한 장 한 장 유인물을 돌렸다. 다음달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홈 구장에서 열릴 예정인 팬미팅을 홍보하기 위한 인쇄물이었다. 유심히 보니 재미있는 그림이 담겨있다. 1990년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후뢰시맨·마스크맨과 같은 '특촬물' 형식으로 홍보 인쇄물을 만든 것이다.
특촬물은 일본에서 발달한 영상물의 한 장르로서 원래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을 촬영한 모든 영상물을 뜻했다. 하지만 주로 몇 명의 영웅이 지구를 침략하는 악당과 싸운다는 전형적인 내용의 영상물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급기야 '슈퍼 히어로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러한 특촬물의 주요 팬층은 성인이 아닌 어린이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파격적인 홍보 방법인 셈이다.

7일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대호에게 이 인쇄물을 보여주니 민망한듯 씩 웃으며 "지난번에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구단에서 찍자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이렇게 나온걸 보니 웃기긴 한데 팬들이 재밌어하면 좋겠다"며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파격적인 홍보물이 프로야구 구단에서 나오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 '한신 텃밭' 오사카, 오릭스의 현 주소
일본 프로야구는 도쿄에 연고를 두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오사카에 연고를 둔 한신 타이거즈가 인기를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 '요미우리 팬과 반 요미우리 팬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요미우리의 인기는 압도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인기가 많이 떨어지고 평준화 된 상황이다.
한신은 오사카 야구 팬들에겐 종교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 롯데 자이언츠를 연상케 하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한신은 명문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시리즈 우승이 1985년 단 한번밖에 없을 정도로 지독하리만큼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한 구단이다. 하지만 지금도 오사카 시내 편의점을 가면 신문 가판대에는 온통 한신 이야기 뿐이며 서점에도 한신 구단 동향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수 종이나 존재한다.
이처럼 오사카에서 한신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반면 오사카를 함께 연고지로 쓰는 오릭스의 인기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한신 타이거즈 선수들은 오사카에서는 연예인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린다. 오릭스는 한신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일본 중앙조사서에서 발표한 '인기 스포츠' 조사(표본=1,269명)에 따르면 요미우리가 21.4%의 응답률로 전체 1위, 한신이 12.6%를 얻어 2위에 올랐다. 여기에 홋카이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니혼햄이 5.8%의 응답으로 3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이대호가 뛰고 있는 오릭스는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12개 구단 가운데 오릭스는 선호도 꼴찌에 머물렀다. 3년 연속 꼴찌로서 2011년 0.6%의 응답자만 오릭스를 응원한다고 답했다. 그 위를 1.4%의 지바 롯데와 1.7%의 히로시마가 잇고 있다. 또한 오사카와 교토 지역 인기도 조사에서 오릭스는 2.1%에 그쳐 12.3%를 얻은 요미우리 보다도 인기가 적었다. 1위는 단연 53.3%의 팬층을 보유한 한신이다.

▲ 아이들이 행복한 야구장, 교세라 돔
앞서 특촬물을 소재로 한 팬미팅 홍보 인쇄물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릭스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마케팅에 한창이다. 지난해 1월 새로 발표된 구단 마스코트인 '버펄로 불'과 '버펄로 벨'은 어디를 보더라도 황야를 질주하는 들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머리 옆쪽에 달려있는 작은 뿔로 간신히 버펄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 두 캐릭터의 탄생 배경도 만화와 같다. 한 미치광이 과학자가 버펄로와 로봇을 결합해 만든 것이 바로 버펄로 불과 버펄로 벨이라는 것이다. 남매 사이인 이 둘은 미래에서 온 로봇이며 적(여기서는 오릭스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을 무찌른다는 설정이다. 말 그대로 만화와 다를 바 없는 배경 스토리다.
두 캐릭터 가운데 버펄로 벨은 야구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버펄로 벨의 인터넷 팬사이트가 따로 존재한다"고 귀띔하며 "인기가 좋아서 사인회를 개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세라돔에서 이들 두 캐릭터가 클리닝 타임때 잠시 등장하면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함성 못지 않은 갈채가 쏟아진다.

이처럼 교세라 돔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다. 이번 홈 개막 3연전동안 오릭스는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6일 경기가 끝난 뒤 어린이들은 일제히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연장 11회까지 경기가 치러진 까닭에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경기가 끝났지만, 어린이들은 밤 11시까지 우상과도 같은 선수들이 뛰던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교세라 돔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불이 꺼졌다.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바로 다음 날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구장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어린이 팬들이 즐거워 했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닌가"라면서 "종종 실시하고 있는 이벤트인데 반응이 좋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이 행복한 야구장, 바로 교세라 돔이다.
▲ "어린이 한 명을 팬으로 만들면 부모가 움직인다"
라쿠텐과의 홈 개막 3연전을 맞아 오릭스는 소학교(초등학교) 학생 무료 초대행사를 실시했다. 덕분에 오사카 지역 초등학생들은 야구를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때문에 7일 오후 2시 경기를 앞두고 교세라 돔 전철역에는 이들을 안내하기 위한 인원들이 배치되었고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하나둘 씩 구장으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6일과 7일 이틀동안 교세라 돔은 수용인원 3만6000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예년 평균이었던 1만7000명 보다는 훨씬 많은 2만8000여 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단체로 관람을 오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 개방한 그라운드를 마음껏 누비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오릭스가 어린이 팬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어린이 한 명을 팬으로 만들면 부모가 움직이게 되어 있다"면서 "그러면 세 명이 우리 야구장에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응원하는 팀이 굳어진 연령층을 상대로 오릭스가 팬으로 끌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쟁팀이 지역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한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릭스는 팬층 확보를 위한 우회 공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어린이를 팬으로 흡수하는 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자녀들을 다시 교세라 돔으로 데려올 것이고, 그러한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오릭스도 자신들 만의 팬층을 굳힐 수 있다.
이와 같은 팬층 공략 방법은 한국 프로야구의 넥센 히어로즈도 쓰고 있다. 한 넥센 구단 관계자는 "목동지역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은 모두 넥센 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장담하면서 "이들이 부모들을 야구장으로 데려오기 때문에 실제로 관중 증가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릭스 역시 어린이 클럽인 '키즈 팬클럽' 가입자 수가 매년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는 게 오릭스 측의 전언이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와 긴테츠 버펄로스가 결합돼 2005년 탄생한 구단인 오릭스는 긴 전통에도 불구하고 인기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특화된 마케팅으로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었다. 여기에 인기 폭발의 기폭제가 될 만한 것은 당연히 성적이다. 오릭스가 거액을 투자해 이대호를 영입한 배경은 여기에 있다. 최근 3년동안 오릭스는 퍼시픽리그 6-5-4위에 그치며 B 클래스(4위 이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대호가 과연 오릭스를 위기에서 구출할 '최종 병기'가 될 수 있을까. 야구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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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라돔(오사카)=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