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조급하지 않다".
'빅보이' 이대호(30,오릭스 버펄로스)의 장타는 언제쯤 나올까. 이대호는 8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벌어진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홈 개막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9경기 연속 선발 4번 타자로 출장하고 있는 이대호의 현재 타격 성적은 타율 2할6푼5리(34타수 9안타) 3타점 2득점, 장타율 2할6푼5리 출루율 3할2푼4리 OPS 0.589를 기록 중이다.
결국 개막 후 9연전 동안 장타는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오릭스 역시 개막 후 9경기동안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호가 2010년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장타 침묵이 자칫 장기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일 경기가 끝난 뒤 일본 취재진은 이대호에 "왜 홈런이 안 나오냐"고 물어보며 팀의 새로운 4번 타자에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이대호는 "홈런은 치고 싶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하면 곧 나올 것"이라고 덤덤하게 답했지만 다음날 일본 언론은 '이대호에 홈런 질문을 했더니 짜증'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일제히 썼다. 이제 일본 언론에서도 서서히 이대호에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다.
이대호가 장타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일본 투수들은 실투가 거의 없다. 특히 이대호를 상대로는 철저하게 낮은 코스에 공을 뿌리며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 낮은 코스에 공이 들어오면 장타를 치기 힘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형적인 레벨 스윙 타자인 이대호가 장타 욕심으로 낮은 공을 걷어 올리는 어퍼 스윙을 시도하면 타격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기에 위험하다.
이대호는 "일본 투수들의 견제가 정말 심하다. 뭘 좀 치려고 해도 볼만 던진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나쁜 공을 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내 타격 폼을 수정하면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고 경계했다. 여기에 일본 공인구도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다. "확실히 한국 공보다는 딱딱하고 반발력이 적다는 느낌"이라는게 이대호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이대호는 아직 여유가 있다. 우선 이대호의 장기인 '선구안'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제까지 37번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는 삼진을 4개 밖에 당하지 않았다. 일본 투수들이 던지는 유인구에 섣불리 방망이를 내기 보다는 아직은 공을 보고있다. 일부에서는 이대호가 너무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아직은 하나라도 공을 더 볼때다.
여기에 타구의 질은 시즌 초반과 확연히 달라졌다. 줄곧 "공이 뜨질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이대호는 시즌 초반 줄곧 잘 맞은 공이 나오지 않았다. 외야 플라이가 7번째 경기에서 처음 나올 정도로 이대호의 타구는 줄곧 아래로 가라 앉았다.
하지만 차츰 타구의 질이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비록 장타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7일 경기에선 워닝 트랙 앞에서 잡힌 플라이 두 개와 2루타성 타구 하나를 기록했다. 또한 8일 경기에선 줄곧 투수 쪽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날리며 타격 감각이 올라왔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대호 본인이 자신감을 잃지 않고있다. 8일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대호는 "전혀 조급하지 않다. 팀에서도 부담을 안 주고 나 역시 특별히 쫓기는 기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은 아직 투수가 유리할 때다. 곧 적응이 되면 큰 타구도 나오지 않겠나"라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타자가 타석에서 여유를 잃으면 그때부터 슬럼프는 시작된다. 이대호는 시즌 초반 공을 오래 보면서 일본의 스트라이크 존과 투수의 투구패턴 등을 몸에 새기고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마수걸이 장타가 나오는 것이다. 팀에서 거액을 투자한 이대호에 가장 바라는 건 장타다. 오릭스는 개막 후 9경기 연속 무홈런에 시달리며 총 20득점밖에 올리지 못했다. 경기당 2.2점의 지독한 빈타에 시달리며 퍼시픽리그 4위(3승 5패 1무)에 그치고 있다. 이대호의 침묵이 길어지면 팀 내외에서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이대호가 이번 주 지바 롯데-세이부로 이어지는 원정 5연전에서 침묵을 깰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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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라돔(오사카)=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