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타율 2할대 초반. 빼어난 장타력도, 도루 저지에 필요한 강한 어깨를 지니지도 않았다. 그러나 팀 내 신임은 누구보다 두텁다. 외국인 투수부터 신예 투수, 베테랑 투수까지 그의 리드를 따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LG의 17년차 베테랑 포수 심광호(35)가 개막 2연승의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다.
지난 7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LG와 삼성의 2012시즌 개막전. 프로 데뷔 17년 만에 개막전 선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심광호는 “수학여행에 온 기분이다”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특별히 잘 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투수와 잘 호흡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우리 투수들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도록 유도해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심광호는 이날 마운드에 오른 5명의 LG 투수들을 노련하게 리드했다.
에이스 주키치는 심광호의 리드 속에 건재함을 과시했고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5년차 투수 한희는 자신 있게 정면승부를 펼치며 팀의 리드를 지켰다. 그리고 마무리 리즈는 완벽한 투구로 통산 첫 세이브를 달성했다.

8일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심광호의 리드와 함께 깜짝 선발 카드 이승우가 무실점 호투를 펼쳤고 재기에 성공한 류택현은 960일 만의 승리투수가 됐다. 한희와 리즈는 전날에 이어 이틀연속으로 각각 홀드와 세이브를 기록했다. 심광호는 타석에서도 활약했다. 개막전 멀티히트에 이어 8회초 결승점이 된 희생플라이를 때렸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9회 최다 실점율을 기록하며 가장 뒷문이 불안한 팀이었던 LG는 마운드의 힘을 앞세워 12년 만에 개막 2연전을 싹쓸이했다. 경기 후 LG 덕아웃은 환호로 가득했고 투수들은 심광호의 리드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이승우는 “심광호 선배님의 사인만 믿고 던졌다. 심광호 선배님은 항상 상대 타자들을 철저하게 분석하신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심광호 선배님의 리드만 따랐다”고 깜짝 호투의 공을 심광호에게 돌렸다.
류택현 역시 위기 상황에서 지난 시즌 홈런왕 최형우를 잡은 순간을 회상하며 “심광호 포수와의 호흡이 매우 좋았다. 초반에 커브를 보여준 다음에 결정적인 순간 심광호 포수가 직구를 요구했는데 정말 절묘한 리드였다. 아마 최형우의 머릿속에는 커브만 있었을 것이다”고 심광호의 리드를 치켜세웠다.
이승우의 말처럼 심광호는 LG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선수다. 엄청난 공부량과 더불어 야구 이론, 선수들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해서도 쉬지 않고 연구한다. 2년차 신예 포수 유강남은 “광호 선배님은 정말 모르는 게 없으시다. 블로킹, 포구, 투수 리드 같은 부분에서 의문에 빠질 때면 광호 선배님을 찾아가는데 바로 해답을 주신다”면서 심광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에이스 주키치도 “내게는 심광호가 최고의 포수다. 컨트롤로 승부하는 나 같은 투수에게는 수 싸움에 능한 심광호가 잘 맞는다. 나 역시 상대 타선을 분석하고 경기에 나서지만 심광호는 항상 그 이상을 꿰뚫고 있다”고 심광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16년을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왔지만 조연이었다. 2006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오승환에게 극적인 동점 투런홈런을 때리며 모두를 놀라게 했어도 이 홈런이 팀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후 포수난에 시달리던 삼성과 LG로 이적, 두 차례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1군보단 2군에서, 그라운드 보단 덕아웃을 지켰다.

하지만 심광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한화 시절 송진우·구대성·정민철 등 대선배들의 공을 받으면서 이기는 투구에 대해 연구했고 마운드 위에서 투수들의 심리에 관해 관심을 쏟았다. 포수로서 투수가 타자가 이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투수의 자신감이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는 것도 깨달았다. 출장 경험이 많이 않았지만 경험 하나 하나을 소중히 여기며 언젠가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송진우 선배는 정말 제구력이 엄청났다. 그야말로 요구하는 대로 공이 날아왔다. 미트를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구대성 선배는 배짱이 두둑했었다. 스리 볼로 볼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도 슬라이더를 던졌다. 볼넷을 내줘도 다음 타자를 잡으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정민철 선배는 일본 가기 전까지 엄청난 직구를 구사했었다. 직구가 날아 들어오는 게 다른 투수와은 차원이 달랐다. 확실히 대투수들은 자신만의 노하우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다들 자신감이 넘쳤다. 포수로서 투수들의 마음가짐을 잡아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올 시즌 심광호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베테랑 포수로서 투수들은 물론 어린 포수들도 이끌어야 한다. 프로 생활 17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잡았고 그만큼 그라운드 안팎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많은 이들이 LG의 최대약점으로 포수진을 뽑았지만 심광호는 이들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우리 투수들은 편안하게 해주고 상대팀 타자들은 짜증나게 하겠다. 특히 볼배합 같은 부분에서 상대 타자가 까다롭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절대로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전지훈련에서도 투수들과 서로 안 되는 부분은 함께 보완할 것을 목표로 호흡을 맞췄다. 이기는 야구를 하려고 한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오로지 팀이 이기는 데에만 집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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