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보이' 이대호(30,오릭스 버펄로스)가 10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으로 일본 프로야구 데뷔 10경기 째를 가졌다.
이대호는 지난달 30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개막전부터 10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까지 10경기 모두 선발 4번 타자로 출장, 타율 2할4푼3리(37타수 9안타) 출루율 3할1푼7리 3타점 2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삼진은 5개(4볼넷)만 당하며 선구안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 단 하나의 장타가 없는 게 걸린다.
현재 오릭스의 팀 타율이 2할2푼1리, 팀 득점이 22점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대호의 성적이 팀 평균에 비해 떨어지는 편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팀에서 외국인 4번 타자에게 기대하는 바에는 아직 미치지 못 한다고 볼 수 있다.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지금과 같은 이대호의 '장타 실종' 증상이 좀 더 길어진다면 코칭스태프가 먼저 조급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호가 현재의 침묵을 깨기 위한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41차례 타석에서 맞이한 157구를 탄착군에 따라 분석해봤다.

▲ 몸쪽 승부가 줄어들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한 타자들이 하나같이 이야기 하는 건 일본 투수들이 몸쪽 승부를 즐겨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타자들은 몸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공에 약점을 노출한다. 오죽했으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돈 드라이스데일은 "타석에서 붙는 녀석이 있으면 내 할머니라도 맞혀버릴 것"이라고 했을까. 이는 투수들에게 몸쪽 공이 가장 큰 무기임을 방증하는 말이다.
이대호는 타고난 손목 힘과 정확한 컨택 능력으로 많이 보완했지만 대다수 타자들과 마찬가지로 몸쪽공엔 약점을 드러낸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이대호에 배팅볼을 던졌었던 투수는 "대호형도 몸쪽엔 약했다. 그래서 그쪽 코스로 더 공을 많이 던져주곤 했다. 대신 바깥쪽 공엔 강했다. 긴 리치(팔 길이)로 꽉찬 바깥쪽 공도 걷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문인지 이대호의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 3연전에는 몸쪽 공이 많이 들어왔다. 3경기 동안 소프트뱅크 투수들은 이대호를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30개 던졌는데 몸쪽 스트라이크는 절반에 가까운 14개에 달했다. 이들은 몸쪽 스트라이크 존을 충분히 이용한 뒤 바깥쪽 낮은 유인구를 던져 이대호의 범타를 유도하는 패턴의 투구를 했다.

그렇지만 4차전부터 이대호를 상대한 투수들은 투구 패턴을 조금 바꿨다.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공략점을 변경한 것이다. 3일 니혼햄전부터 10일 지바 롯데전까지 7경기에서 상대 투수들은 47차례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졌다. 이 가운데 바깥쪽 스트라이크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26개였다. 왜 바깥쪽 위주로 투구 패턴이 바뀌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대호에 대한 경계다. 한 야구 관계자는 "큰 것을 맞지 않기 위해 바깥쪽 승부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아직은 서로 탐색전을 벌이는 단계"라고 분석을 내놓았다. 몸쪽 공에 타자들이 맥을 못 추는 건 누구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투수들이 몸쪽으로 쉽게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실투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너무 깊게 붙이면 사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구가 조금만 흔들려도 한 가운데 공이 들어가게 된다. 이대호와 같은 거포에겐 좋은 먹잇감이다. 또한 심각한 투고타저 현상이 올 시즌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큰 것 한 방은 자칫 승부의 향방을 한 번에 가를 수 있다. 그렇기에 투수들은 몸쪽 공 던지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단 이대호는 상대 투수들이 어느 쪽으로 공략을 하든 가리지 않고 타석에 임하겠다는 자세다. 그는 "특별히 일본 투수들이 내게 몸쪽 승부를 많이 한다, 바깥쪽 승부를 많이 한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 "그건 투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몸쪽 공이 주무기인 투수는 몸쪽으로 많이 들어올 것이고, 바깥쪽에 자신 있는 투수는 그쪽으로 갈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타석에서 생각이 많아지면 불리해 질뿐이라는 사실을 이대호는 알고 있었다.

▲ 더욱 많아진 유인구, "칠 공이 없다"
올 시즌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한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일본 진출을 앞둔 이대호에게 일본 투수들의 투구에 대해 이런 조언을 했다. "3볼까지 유인구만 던진다. 한국에서는 3볼 먼저 먹고 시작하면 볼넷 얻는 게 대다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3볼에서 포크볼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 3개 연속으로 들어와 삼진 먹는 일이 다반사다". 이 말은 일본 투수들의 제구력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제구력에 자신이 있기에 유인구를 쉽게 던지고 또 효과를 본다.
이대호가 타석에서 맞이한 157개의 공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건 77개였고 볼은 80개였다. 일반적으로 제구력을 갖춘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비율이 2:1정도 된다.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투수는 2.5:1 정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본 투수들은 이대호를 상대로 스트라이크 보다 볼을 더 많이 던졌다.
바로 거포에 대한 경계가 가장 큰 이유다. 이는 첫 3연전 이후 더욱 심화됐다. 소프트뱅크 3연전에서 이대호는 총 52개의 투구를 상대했는데 스트라이크가 30개, 볼이 22개였다. 하지만 이후 7경기에서 스트라이크 47개, 볼 58개로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대호는 배트 컨트롤로 안 좋은 공은 커트를 해 나가며 6개의 삼진만 기록하고 있지만 볼넷 역시 4개밖에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대호는 "타석에서 칠 공이 없다. 놔두면 다 볼인데 내가 욕심을 내서 크게 휘두르다가 좋은 타격을 못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즉 볼넷을 얻을 수 있는 공도 건드렸다가 범타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롯데시절 이대호를 지도했던 LG 김무관 코치는 "일본 선수들은 집요할 정도로 유인구를 던질 것이다. 그걸 반드시 참아야 한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 되는 유인구를 던지는데 이걸 건드리면 지금과 같은 땅볼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이걸 인내심을 갖고 참아야 한다. 나쁜 볼에 방망이가 나가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상대방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이라고 애정 어린 조언을 보내기도 했다.
흔히들 일본 야구를 두고 '현미경 야구'라고 부른다. 철저한 전력분석으로 선수의 약점을 파악한 뒤 그곳을 집중 공략하기에 붙은 말이다. 이미 이대호를 상대할 일본 프로야구 팀들은 이대호에 대한 전력분석을 마친 뒤 범타를 유도하기 위한 최적의 시나리오로 상대하고 있다. 물론 오릭스 구단도 이대호에 상대할 투수들의 강점과 약점 등 전력분석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대호는 낯선 스트라이크 존·바뀐 공인구 등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다. 이대호 역시 "지금은 투수들이 유리할 때"라며 적응에 힘쏟고 있음을 내비쳤다. 오릭스 팬들과 한국의 팬들은 이대호가 적응을 마치고 활약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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