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극 '패션왕'이 '강자와 약자,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입체적 캐릭터와 예측 불가의 상황 전개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방송된 '패션왕' 7회에서는 주인공 네 남녀의 사랑 전선이 혼란스럽게 엉키며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극 중에서는 최안나(권유리 분)와 강영걸(유아인 분), 이가영(신세경 분)과 정재혁(이제훈 분)의 키스신이 연달아 그려졌다.
이처럼 젊고 '핫'한 배우들의 자극적인 장면들이 연달아 펼쳐지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극 중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캐릭터다.

'패션왕' 속 인물들은 극 초반부터 안나-재혁과 가영-영걸로 짝을 지어 대립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이 공식이 깨진 것이다. 예상된 애정 전선이 흐트러짐과 동시에 주인공들의 예상 밖 모습들도 함께 드러났다.
안나는 일명 '차가운 도시 여자'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큰 도도한 여자다. 연인 재혁이 인생의 목표이며, 재혁 모(母)(이혜숙 분)의 대놓고 선포되는 으름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여자다. 특히 재혁이 가영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가영이 눈엣가시인 상황.
여느 극 중이라면 '악의 축'을 맡아야 할 그녀다. 하지만 이날 방송분에서 안나는 영걸의 팔에 힘없이 휘둘려 키스를 당하고, 밟으려 해도 꼿꼿이 일어서는 가영을 째려볼 뿐이다. 안나는 가영에게 흔들리는 재혁의 모습이 뻔히 보여도 큰 소리 제대로 치지 못하고 재혁이 떠날까 노심초사하는 게 전부다.
'악녀' 안나는 표독스러운 눈빛은 잠시뿐, 가영에게 사랑에서나 일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약자'가 돼버렸다.
대신 가영이 승승장구를 이루고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대기만성형' 캔디 소녀 가영은 극 중 거대 세력 안나와 대립하며 현실적으로는 약자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화려한 배경의 안나보다도 능력을 인정받고, 안나의 공격에도 오히려 되받아치며 안나를 몰아세운다. 특히 극 중 두 남자 영걸, 재혁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안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재혁과 영걸 또한 누구 하나 계속 승자가 되지 않고, 누구 하나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지 않는 등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식 공격이 한창이다.
이에 네티즌은 "모두 공감이 가는 캐릭터다", "나쁜 캐릭터들만 있는 것도 같고, 나쁜 캐릭터가 없는 것도 같다", "악녀가 불쌍하기도 하고 선한 가영이 더 억척스럽기도 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흥미를 느끼고 있다.
회가 거듭할수록 주인공 간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전개를 맞고 있는 '패션왕'. '패션왕'은 다른 드라마 속 '악+강자'와 '선+약자'의 대립 속에서 권선징악을 향해 내리닫는 전개와는 색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패션왕'은 상황에 국한된 인생과 사랑, 목표를 침묵하며 수용하지 않고 주인공들 스스로 개척해서 변화시킨다. 극의 캐릭터들은 이성과 감성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며 팔색조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패션왕'이야말로 선과 악이 없기에 승자와 패자도 없는 '진짜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jumping@osen.co.kr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