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투수에 대한 낯가림 현상은 여전했다. 선수 스스로도 잘 던졌으나 상대 타선 덕분에 ‘코리안 특급’은 좋은 활약상을 선보이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 장 첫 경기를 쾌투로 장식했다. 두산 베어스 타선의 무기력한 방망이는 박찬호(39. 한화 이글스)에게 값진 한국 프로야구 첫 선발승을 선물했다.
두산은 12일 청주구장서 한화 이글스와 경기서 2-8로 완패했다. 특히 이날 경기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에 빛나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의 경기였던 만큼 주목도가 큰 경기였다. 시범경기서 박찬호는 2경기 1패 평균자책점 12.96으로 부진했다. 홈런 2개 포함 안타 16개를 허용해 불안감을 노출한 박찬호였으나 이날 두산 타선을 상대로 박찬호는 6⅓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2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역투했다.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 입단 이래 19년차 프로 물을 먹고 있는 베테랑 투수다. 직구 구속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나이 답지 않게 아직도 최고 149km의 직구를 거침없이 던진다. 경험에 구위까지 갖춘 데다 두산은 그동안 낯선 투수와의 첫 대결서 거의 십중팔구 약한 면모를 보여왔다. 2010년부터 두산 타선은 이재곤, 김수완(이상 롯데), 김희걸(KIA) 등 신예들이나 선발로서 투구 표본이 많지 않던 투수들에게 약했다.

박찬호도 두산 타자들과 겨뤄보지 않았고 반대로 두산 타자들도 박찬호의 공을 직접 때려내본 적은 거의 없다.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서 합동 훈련을 한 적은 있으나 제대로 된 실전 경기를 치러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 결과 '두산은 낯선 투수에게 약하다‘라는 법칙이 다시 한 번 맞아 떨어졌다.
1회 박찬호는 2개의 볼넷을 내주는 등 스트라이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번 타자 정수빈은 이종욱의 스트레이트 볼넷 후 볼카운트 1-1에서 수싸움 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몸쪽 떨어지는 변화구를 당겨 1루 땅볼에 그쳤다. 오랜만에 복귀한 김현수는 삼진에 그쳤고 김동주의 볼넷 이후 최준석도 힘없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첫 회 볼 판정이 많았기 때문에 박찬호는 2회부터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가 나올 수 있는 코스로 공을 제구했다. 2회 선두타자 이원석 타석만 해도 3볼로 카운트를 시작했으나 풀카운트까지 끌고 가 7구째 커터로 헛스윙 삼진 요리했다.
이어 박찬호는 손시헌도 3구 만에 헛스윙 삼진. 용덕한에게는 최고 148km 직구를 던져 3루 내야 플라이로 잡았다. 3회에는 고영민-이종욱-정수빈을 공 3개로 3연속 땅볼 처리했다. 144km 바깥쪽 직구, 144km 바깥쪽 직구, 143km 바깥쪽 투심 패스트볼로 3연속 땅볼을 유도했다. 역대 36번째 1이닝 3구 최소투구 삼자범퇴 기록이었다.
4회에도 두산의 중심타선을 맞아 김현수-김동주를 연속 투수 앞 땅볼 처리했다. 김현수에게는 직구, 김동주에게는 커터로 승부했다. 이어 최준석에게 5구째 바깥쪽 높은 직구를 던지다 한국 무대 첫 안타를 맞았지만 이원석을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5회에도 박찬호는 고영민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는 등 삼자 범퇴로 깔끔하게 막았다.
변화구가 많았던 것이 아니다. 대체로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유도할 수 있는 직구 변종 구종 위주로 던졌으나 두산 타선은 박찬호의 이 투구 패턴에 그대로 말려들었다. 3회초 박찬호의 3구 삼자범퇴 기록은 모두 직구 변종 구질을 성급하게 때려냈다가 당한 것이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이를 역이용해 공략하는 ‘생각하는 타격’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경기였다.
결국 두산 선발 이용찬은 몸을 풀 시간도 채 갖추지 못하고 3회말부터 공략당한 채 5실점 패전을 떠안았다. 이용찬의 투구도 아쉬웠으나 그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타선의 책임도 없는 것이 아니다. 3구 삼자범퇴 희생양 중 한 명인 정수빈이 다른 타석서 파울 커트를 한 장면이나 박찬호의 마지막 타자였던 허경민이 공을 끝까지 보고 스윙해 중전 안타를 때려낸 정도. 그 외 두산 타자들의 모습에는 아쉬운 장면이 많았다.
물론 기본적으로 박찬호가 잘 던졌기 때문에 두산이 고전하다 패한 것이다. 그러나 시범경기 시작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김진욱 감독이나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는 “대기 타석에서도 상대 투수의 공을 유심히 지켜보고 타석에 들어서기 전 어떤 공을 치고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기본적인 생각은 해야 한다. 특히 테이블세터나 이닝 선두타자는 안타를 치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어떤 투구 패턴을 보여주는 지 후속 타자들도 알 수 있도록 괴롭힐 줄 알아야한다”라는 점을 항상 강조해왔다.
박찬호의 공을 공략하려 애쓰다 실패한 두산 타자들은 이 이야기를 정말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직 2012시즌은 129경기나 남아있다.
farinelli@osen.co.kr
청주=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