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베테랑 좌완투수 류택현(41)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류택현은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와 주말 3연전 첫 경기에서 9회초에 등판, 조웅천의 813경기 출장 기록을 넘어 31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뛴 투수가 됐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주위의 편견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결과였다. 2010년 한국 나이 마흔 살에 재기를 위해 팔꿈치인대접합 수술을 받는다고 했을 때만 해도 류택현의 복귀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구단에선 은퇴를 권유했고 전력분석원 및 코치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류택현은 자신이 있었고 선수로 돌아와서 맡을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수술과 재활을 택했다.

“오랜 시간을 뛰었지만 팔꿈치 부상은 처음이었다. 수술을 받더라도 재활을 통해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돌아오면 선발 투수를 맡는 것도 아니고 불펜 투수 역할이라면 충분히 몸이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야구가 전보다 잘 되고 있었다. 프로 초창기에는 힘든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런 경험들이 내겐 포기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힘들게 왔는데 여기서 그만둬 버리면 후회만 남을 것 같았다. 야구 선수로서 마지막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류택현의 말대로 그는 프로에서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1994년 프로입단 당시 류택현에게 프로의 벽은 높았고 제구력 난조로 5시즌 동안 소속팀 OB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LG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발전과 변화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 2002시즌 마침내 제구력 안정과 변화구 장착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서 입지를 굳혔다.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했고 3시즌 연속 3점대 평균자책점을 올렸다. 2007시즌에는 전해 당한 부상을 극복하고 리그 최다 23홀드에 평균자책점 2.70으로 통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베테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이다. 류택현은 그야말로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수다. 제구력과 경기 운용 능력에서 뛰어난 기술과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정해진 훈련 일정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차안에서도 틈틈이 근력운동을 하면서 진정한 베테랑이 되기를 바랐다. 이번에 새로 쓴 투수 최다 경기 출장기록도 정작 류택현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후배들에 의해 깨질 기록이다. 기록 때문에 마운드에 서는 게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다시 마운드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나이 먹으면 선수로서 끝났다는 주위의 편견에 지고 싶지 않았다. 고생하는 후배들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었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류택현은 지나간 1년 반 동안의 과정을 결과로 증명했다. 지난 8일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에서 630일 만의 등판했고 960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기록 때문에 출장하는 것이 아닌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좌완불펜투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고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베테랑’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팀의 최고참이라는 뜻이 아닌, 기술이 뛰어나고 노련한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렸다.
한 팀 당 26개의 자리가 있고 자리마다 역할의 크기는 달라도 해야 할 일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선발 투수 혹은 주전라인업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엔트리의 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나머지 자리의 선수들도 잘해 줄 때 그 팀이 상위권에 자리하게 된다. 대주자·오른손 대타·왼손 대타·원포인트 릴리프 투수·패전 처리 투수 등 어떻게 보면 매우 작은 부분이지만 133경기 중 이들로 인해 얻어지는 승수는 상당하다. 류택현은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 역할을 바라봤고 변함없는 구위로 등판마다 무실점 투구를 펼치고 있다.
류택현의 남은 목표는 단순하다. 절대로 베테랑이라는 명분하에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팀에 보탬이 된다는 가정 아래 엔트리에 위치하고 후배 선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보직에서 노력한 만큼 팀 성적 역시 좋아지기를 바란다.
“지금 이 순간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2군에 있는 많은 프로야구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확률이 낮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오래 선수생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고 그만큼 감독님의 목표인 60패를 59패로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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