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이 이렇게 빨리 올라온 건 처음이다".
올해 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우완 심수창(31)이 한 말이다.
심수창은 1월 말 캠프에서 투구폼을 수정하며 구속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 정민태 투수코치는 당시 "변화구가 워낙 좋은 투수라 직구까지 올리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형적으로 '맞춰 잡는' 투수였던 그는 캠프 당시 이전 봄에 비해 비교적 빠른 142km를 찍었다.

주무기로 활용하던 변화구와 함께 좀 더 빠른 직구를 활용하기 위해 투구폼을 수정한 심수창은 그후 시범경기에서 145km까지 기록하며 구속은 높였으나 제구력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직구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변화구까지 불안정했다.
정규 시즌 첫 등판이었던 지난 15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나선 심수창은 5이닝 동안 8피안타 3탈삼진 3볼넷 3실점을 기록했다. 내려올 당시 팀이 7-3으로 앞서 있었으나 8회 동점을 허용, 승패 요건은 갖추지 못했다.
이날도 초반은 불안했다. 심수창은 1회 선두타자 배영섭부터 우전안타로 내보낸 뒤 이승엽의 적시타에 이어 두 타자 연속 안타를 더 맞고 1회에만 2점을 내줬다. 2회에는 실점은 없었지만 볼넷을 두개나 기록했다.
3회 1점을 더 허용한 심수창은 4회 갑자기 변했다. 삼성의 중심타선인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을 모두 삼진 처리하며 첫 삼자범퇴를 기록했다. 초반의 불안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5회 네 타자를 더 상대한 그는 6회부터 마운드를 이보근에게 넘겼다.
경기 후 심수창은 "초반에 세게 던지는데 제구가 잘 안됐다. 코치님이 힘 빼고 던지라고 하셔서 나중에는 제구에 신경써 던졌다. 삼진을 잡을 때 변화구를 주로 던졌다"고 말했다. 결국 직구를 고집하지 않고 그가 자신있었던 투심 패스트볼, 커브, 포크볼 등 변화구를 택한 것이 주효했다.
심수창은 "나중에 밸런스가 잡혀서 퀄리티 스타트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투구수가 너무 많아서 아쉽게 내려왔다. 너무 오랜만에 던져 무리하지 않았다. 승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팀이 이겨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 28일 잠실 두산전 시범경기에 등판한 뒤 18일 만에 등판해 이날 111개의 공을 던졌다.
한편 최근 정민태 코치가 심수창에게 계속 하는 주문이 있다. 바로 "맞더라도 아쉬워하지 마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는 것. 정 코치는 "좋은 투수들도 안 좋으면 다 맞는다. 한 방 맞았다고 고개 숙이고 아쉬워하면 타자들이 계속 얕본다"며 심수창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당부했다.
유독 안타나 홈런을 맞고 아쉬워하는 사진이 많은 심수창이다. 그가 과연 포커페이스에 성공했을까. 그는 "안타를 맞아도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도 크게 움직인 것 같지 않다.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초반 부진을 극복해내고 밸런스를 찾았다.
그러나 유난히도 마운드를 내려온 뒤 팀이 역전패 당하거나 동점 허용 후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 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불운의 사나이. 이날도 팀은 8회 7-7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0회 10-7로 승리했다. 그는 "승이 너무 어렵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다행히도 그는 누군가를 탓하기 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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